[영화속 스포츠]'쿨 러닝'

  • 입력 2001년 6월 25일 19시 26분


영화와 스포츠의 공통점은?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영화는 비현실성을 통해 이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게 만든다. 물론 브레히트의 세계관을 빌린다면 이러한 헐리우드식 판타지는 현실을 망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현실의 지배구조에 종속되게 하는 역기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의 전쟁 영화 ‘진주만’이 전형적인 미국식 잔치판이라지만 대다수 비평가들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수작으로 알려진 ‘라이언 일병 구하기’마저도 실은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식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판박이라고 비판한다. 진지하고 정교한 구조 때문에 오히려 ‘진주만’보다 위험한 영화라는 분석도 있다.

스포츠도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과거 독재 시절의 지배 전략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3S’ 즉 섹스, 스포츠, 스크린을 특히 주목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스포츠 역시 현실을 망각하고 짜릿한 승부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스포츠가 공통적으로 선사하는 판타지의 매력은 쉽게 거절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너무 무겁고 갑갑한 현실에서 우리는 지쳐 있다. 이럴 때 영화와 스포츠의 판타지가 한순간 청량한 자양강장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바보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동적 관람자로만 파악했던 과거의 문화이론과 달리 요즘은 관람자의 능동적인 작용을 적극 평가하는 편이기도 하다.

예컨대 ‘쿨 러닝’을 보자. ‘페노메논’ ‘당신이 잠든 사이’ 등 비현실적인 소재를 재치있게 다듬어내는존 터틀타웁 감독의 출세작 ‘쿨 러닝’은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의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들려준다. 캘거리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뜨거운 태양의 나라 젊은이들. 그들은 원래 육상 선수로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꿈이었으나 비운의 사고로 좌절당한 후 심기일전, 올림픽의 꿈을 안고 봅슬레이 종목에 출전한다.

생전 눈 구경 한번 못한 젊은이들의 봅슬레이 출전은 비록 헐리우드식 코미디의 틀로 전개되긴 하지만 우여곡절과 기상천외의 드라마로 우리의 긴장된 안면근육을 정성껏 풀어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일단 판타지에 속하는 영화다. 그러나 눅눅하고 습기찬 장마, 그리고 이어질 섭씨 35°이상의 한 여름에 ‘쿨 러닝’을 본다는 것은 분명 청량하고 즐거운 판타지 여행이 될 것이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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