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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6월 1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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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씨(40)는 섬세한 시선으로 “현실성과 낭만성의 황금비율을 찾는”(문학평론가 김수이) 시인이다. ‘낭만적 현실주의’와 ‘현실적 낭만주의’의 길항이 평자와 독자 모두의 주목을 받아왔다.
7번째 신작시집에서도 ‘살구나무 발전소’나 ‘바닷가 우체국’ 같은 상상력의 조합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 많고 환한 꽃이 /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다는 걸 봐 / (…) / 그래, 살구나무 어디인가에는 틀림없이 /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살구나무 발전소’ 중)
또 다른 살구나무에서는 ‘나무 속에 / 보일러가 들어 있다 뜨거운 물이 / 겨울에도 나무의 몸 속을 그르렁그르렁 돌아다닌다’(‘시인’ 중)면서 자연의 속살을 감싸는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여기에 시인의 생활 기반인 전라도 농촌의 질펀한 토속정서가 보여주는 해학이 더해지면서 질박한 웃음자락을 마련한다.
‘거름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햇살의 분별력’중)
시인은 부담스러워한다지만 이 시집 역시 대중으로부터 적지않은 주목을 받을 듯하다. 시집 곳곳에서 살가운 사랑의 시편이 말간 얼굴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네 몸 속에 처음 손을 넣어보던 날도 그랬다 / (…) / 세상 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만진 / 내 손끝은, 나는 너를 훔치는 도둑은 아닌가 싶었다 / 네가 뜨거워진 몸을 뒤척이며 별처럼 슬프게 우는 소리를 내던 그 밤이었다’(‘도둑들’ 중).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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