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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6월 14일 01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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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동안 대몽항쟁을 벌이며 팔만대장경을 판각 보관했던 곳이었지만 조선시대 초기에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사찰이 600년만에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96년부터 선원사터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동국대 박물관팀은 12일 4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를 갖은 뒤 “강화도에서 이처럼 웅장하고 큰 규모의 절터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아직 발굴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사유지까지 포함된다면 황룡사나 미륵사지에 버금가는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적지(제 259호)로 지정된 곳을 포함한 1만여평 부지의 발굴지에서는 5칸 짜리 전면(길이 38m)과 3칸 짜리 측면(길이 18m)으로 구성된 대형 건물터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건물터 12개가 발견됐다. 이들 터에서는 건물 초석인 적심과 함께 배수로 구들 석축 등이 좌우대칭형으로 배치돼 있었고 용 봉황 연꽃 등 깨진 문양의 기와조각들도 수천점 출토됐다.
사철터임을 알려주는 금동 탄생불, 청동나한상, ‘연화문’이나 ‘범자문’의 막새류도 출토됐다. 또 ‘識想具慈’ ‘一切衆生’ 등의 글이 새겨진 목판본 불경(묵서사경편, 금니사경편)이 불에 탄 모습으로 발굴됐다.
장경호(기전문화재연구원 원장) 지도위원은 “발굴된 연화문의 경우 권위적이고 품격있는 문양이어서 왕이 드나들던 사찰이었음을 짐작케한다”며 “역사적 가치가 아주 높은 만큼 추가 정밀발굴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245년 창건된 선원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 팔만대장경을 봉안 관리했고 충렬왕 때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될 만큼 위용을 자랑하던 곳으로 사료에 기록돼 있다.
1977년 사적지로 지정됐지만 그동안 황무지로 방치됐왔던 이 곳은 1993년부터 성원 스님 등 불자들에 의해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성원 스님은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발굴작업이 계속 진행될 수 있다면 사찰 복원작업도 병행해 유서깊은 문화관광명소로 자리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선원사 발굴작업은 일단 이달말까지로 예정돼 있으며 인천시와 강화군이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추가 발굴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지도위원들은 “사찰터라는 방증자료가 충분히 나왔고 고려 후기 건축사의 중요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며 행정당국의 지원을 건의하기로 했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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