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프랑스오픈]쿠에르텐 '클레이 황제' 확인

  • 입력 2001년 6월 11일 18시 51분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삼바축구’에 실망한 브라질 국민이 모처럼 날아온 ‘가뭄 속 단비’ 같은 테니스의 낭보에 즐거워했다.

구스타보 쿠에르텐(25·브라질)이 11일 프랑스 파리의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에서 끝난 프랑스오픈테니스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쿠에르텐은 이날 알렉스 코레차(스페인)와의 남자단식 결승에서 3시간12분간의 혈전 끝에 3-1(6-7, 7-5, 6-2, 6-0)로 역전승했다. 우승 상금은 59만달러. 세르히 브루게라 이후 7년 만에 2연패에 성공하며 88년 매츠 빌란더 이후 사상 6번째로 통산 3번째 우승을 이뤘다.

이날 시상식에서 전날 밤 미리 직접 만들어 둔 ‘나는 롤랑가로스를 사랑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차림에 브라질 국기를 갖고 나온 쿠에르텐은 “마법에 걸린 것 같으며 내게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기뻐했다. “성원해 줘 고맙다”는 쿠에르텐의 프랑스어 인사말에 관중은 그의 애칭인 “구가”를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쿠에르텐은 97년 프랑스오픈에서 정상에 등극하며 축구로만 유명한 브라질의 테니스 수준을 세계 정상으로 이끈 주인공. 무명이었던 그는 우승을 계기로 일약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해 세계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쿠에르텐은 부모를 따라 테니스클럽에 다니면서 일찍 라켓을 잡았다. 9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할머니 밑에서 성장한 그의 네살 터울의 동생 길레르메는 정신지체아.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쿠에르텐은 라켓 하나로 영웅의 반열에 올라섰다. 몸이 불편한 동생은 온 가족을 한 데 묶어주는 역할을 하며 즐거움을 언제나 함께 나눈다는 게 그의 말. 심신이 불편한 동생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우승 트로피를 꼭 집으로 가져간다는 그는 유명인사가 된 후에도 거들먹거리지 않으며 겸손하고 검소한 태도를 보여 주위의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기관을 설립, 장애인 돕는 일에 소매를 걷어붙였으며 경기당 200달러씩을 장애인 단체에 쾌척하고 있다.

대회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을 동반하는 쿠에르텐은 허벅지 부상을 이유로 25일 개막되는 시즌 3번째 메이저대회인 윔블던 출전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시드 배정 시스템이 불합리하고 선수들에게 부모 형제를 위한 ID발급이 까다로운 대회에 대한 항의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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