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박수에 도취된 고이즈미

  • 입력 2001년 5월 31일 18시 44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의 ‘입’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둘러싼 그의 발언이 이를 실감하게 한다.

그는 30일 참의원 예산위에서 “한국과 중국은 일본총리의 8월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외교 문제로 삼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한국과 중국은 참견하지 말라는 발언이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그의 발언은 짧은 시간에 많이 변했다. 4월 자민당 총재후보로 나섰을 때는 공식 비공식을 밝히지 않고 “총리가 되면 참배하겠다”고 말했다. 총리가 된 뒤에는 “전쟁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시해야 한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개인신분으로 참배하겠다”(5월9일 중의원 본회의)고 하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공식 비공식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총리로서 참배하겠다”(5월14일 중의원 예산위)로 말을 바꿨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이 점점 강해진 배경에는 일본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다. 요즘 그의 발언 속에는 ‘겁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일본 국내의 분위기는 어느새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으면 엄청난 비난이 터져나올 정도로 바뀌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에서 이웃국가를 배려하려는 자세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개혁을 정권유지의 최대의 무기로 삼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웃국가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의지는 찾기가 어렵다.

그에게 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단념했을 때 관방장관이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다. “평화국가로서의 책임을 생각한다면 이웃국가들의 국민감정에도 적절한 배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나카소네씨가 총리 시절에는 외교문제가 됐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왜 그에게는 문제삼아야 할 외교문제가 아닌지를 묻고 싶다.

심규선<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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