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벽' 깬 두여군 최경희소령-한정원소위

  • 입력 2001년 5월 29일 19시 06분


《각 분야에서 '선구적 여성'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최근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육군대학 교관이 된 최경희(崔敬姬·42) 소령과 최초의 여성 보라매(전투기조종사)가 되기 위해 맹훈련 중인 한정원(韓程媛·23) 소위는 군대내 금녀의 벽 을 넘은 사례다.》

두사람이 휴일인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서 만났다. 최소령은 대전에서, 한소위는 훈련장이 있는 경남 사천에서 각각 상경해 이뤄진 귀한 만남이었다.

▽최소령=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후배였는데, 반갑습니다. 단독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 들었어요. 첫 여성 보라매가 되는 거죠?

▽한소위=이제 걸음마를 뗀 거죠. 앞으로 3년 정도 더 훈련받아야 정식 보라매가 될 수 있어요. 그것도 절반 정도는 낙오되는 형편이니 나중에 결과로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해야죠.

▽최소령=많이 듣는 질문이겠지만 왜 공군을 지원했어요?

▽한소위=좀 다른 삶을 살고 싶었어요. 대학 진학을 앞두고 흔히 여자는 무난한 대학 나와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그 무렵 신문에서 공군사관생도 모집요강을 보게 됐죠. 어머니 반대가 심했지만 제 고집에 지셨습니다. 선배님은?

▽최소령=저는 서양사 석사까지 마치고 여군에 지원했는데 공부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죠. 좀더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고 열정적으로 할 일을 찾고 싶었어요.

▽한소위=선택에 만족하십니까?

▽최소령=물론. 군인은 그냥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계유지나 자아실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의미가 돼야 하는 거죠. 지금 당장 월급 두세배 준다 해도 일반 회사에서는 일 못할 것 같아요. 개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라고.(웃음)

▽한소위=부대는 다르지만 선배님 같은 여성 장교들이 계셔서 저같은 사람이 여군을 꿈꿨다고 생각합니다. 적(敵) 전술을 강의하신다고 들었는데...

▽최소령=북한의 공격을 전제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연구합니다. 군인이라고 야외훈련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수업을 듣는 육군대 소령들도 밤 12시까지 이론 전략 전술 공부를 열심히 하죠. 그나저나 파일럿 수업이 더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

▽한소위=사관학교 때부터 힘든 것 없냐 는 질문에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대답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읽혀요. 그러나 실은 그밖의 것이 더 힘듭니다. 시켜보지도 않고 분명 떨어질 것 이라 생각하는 기색 등. 잘하라 고 격려해줘도 힘든데 할 수 있을까 를 의심받다 보면 오기가 발동하기도 합니다.

▽최소령=맞아, 육군에서도 여성은 지리감각이 떨어진다 는 선입견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요. 기본적으로 장교는 사명감과 책임감, 위기관리능력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남녀 불문하고 각오가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최초의 여성 ○○○ 식으로 얘기되는 것, 좀 거부감도 들어요.

▽한소위=첫 공중조작 훈련때 선배님과 함께 비행기 탔는데, 교관이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훈련내내 일부러 목소리도 크게 하고 했더니 내려와서는 야, 너 여자 맞냐 고 하시던데요. 그래도 공군에는 가까이 여자 선배가 없어 허전해요. 처음 군생활하실 때 선배가 계셨나요?

▽최소령=육군에 여군장교가 고작 50여명이죠. 10년 전까지 아예 여군병과로 운영됐으니까. 임관시절 국군장병 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 받고 웃기도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여군의 입지도 높아져 육해공군 모두 사관생도를 받고 있잖아요. 지금 여군 비율이 군 인력의 0.3%인데 2003년까지 지금보다 1.5배 정도로 늘릴 예정이랍니다.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20대 초반 여성으로서 삶은?

▽한소위=주말이면 동료들과 외출해 떡볶이도 사먹고 쇼핑도 합니다. 미팅 나가면 총 쏴봤냐 는 식의 질문만 나오니 교제가 쉽지 않은 듯 해요. 저는 여군을 뽑은 이유가 남성과 같아지라는 뜻은 아니라고 봐요. 결혼이나 출산 등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필요 없다고 봅니다. 최소령님은 미혼이시죠?

▽최소령=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임자를 못만났다고 할까. 어려서부터 결혼은 선택의 문제라 생각하던 편이죠.

▽한소위=우리같은 경우가 뉴스가 되지 않는 시대가 빨리 와야 할 것 같아요.

자매처럼 대화하던 이들이 헤어지는 순간. 한소위가 차렷 자세에 필승 을 외치며 최소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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