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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27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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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제도 사람들이 쥐를 잡으려고 인도에서 들여온 몽구스라는 동물이 조류와 파충류를 말살하는가 하면, 남미 해상에 있던 부레옥잠은 50여개국으로 번져나가 어류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외래종의 유입은 ‘제2의 구제역’과 같은 ‘자연의 복수’를 초래한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로 외래종을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토종 살리기 운동이 벌어진다.
이런 현상은 비단 자연계뿐만이 아니다. 우리 경제에서도 이런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나는 왕처럼 살고 있소”라는 제목으로 외국 투자회사 직원이 보냈다는 e메일 내용이 이를 확인시켜 준다.
“거의 매일 골프와 저녁 술대접 등 향응을 받고 평균 3명의 여성들로부터 밤을 같이 보내자는 제의를 받았으며 아파트의 침실은 ‘영계의 하렘(이슬람왕의 부인들이 기거하는 곳)’을 위해 사용됐다.”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지는 몰라도, 미국의 월가에 있는 친한 동료에게 보낸 것으로 봐서 전혀 가공의 얘기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수입 금융인’들이 ‘왕처럼’ 지내는 동안 ‘토종 금융인’들은 구조조정의 물결에 휩쓸려 생계와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게다가 ‘토종’과 ‘수입종’의 차별은 몇 가지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첫째, ‘수입 금융인’이 ‘토종 금융인’보다 능력이 훨씬 낫다, 수입 금융인에게 돈을 더 많이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수입종이 아니더라도 국내의 외국금융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능력 있는 직원’으로 대우받고 있다. 후배인 ‘수입 금융인’을 상사로 모셔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둘째,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해야 고소득과 고급 생활이 보장된다는 것. 외환위기 이후에 미국 변호사나 경영학 석사(MBA)출신들이 잘 나갔다. 국내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월급보다 몇 배나 많은 소득이 보장됐다. 그래서 국내 은행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던 일류대학 출신 직원들이 다시 미국으로 대학원 과정을 밟으러 가는 게 유행이 될 정도였다.
과연 이런 ‘신화’는 근거가 있는 것인가. 토종들의 경쟁력이 뒤지는 게 자질이 부족한 탓일까.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관치금융과 규제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토종들은 규제 때문에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반면 외국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그 결과 외국 금융기관은 ‘우량’으로 취급받는 반면 국내 금융기관은 관치금융으로 ‘부실’의 대명사가 됐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도 따라서 ‘부실’로 찍혀 버렸다.
이렇다보니 외국의 금융제도와 관행은 절대적인 ‘모범 답안’이 돼버렸다. 세계화 추세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우리 환경에 맞지 않는 외국제도는 겉돌기 마련이다. 은행들이 거액을 들여 외국에서 들여온 신용평가방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신용경색은 여전하다. 마치 외국에서 들여온 황소개구리가 우리 생태계를 망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 토종들이여 분발하자.
박영균<금융부장>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