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5월 18일 19시 0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언어와 씨름해야 하는 시인의 숙명은 산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황씨는 ‘산문은 느슨한 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최상의 언어로 빚어지는 정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산문집은 그런 ‘정열’의 알리바이와 같다. 1980년대부터 시작(詩作)의 빈 곳을 채워준 70여 편의 맛깔스런 글이 실려 있다. 비유하자면, 여행과 일상, 음악과 시,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성찬과 같다.
‘분위기를 위해서 쓰여진 글은 거의 없다’는 시인의 주장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산문이 그의 시와 닮아있음을 간파할 것이다. 글 곳곳에서 세상살이가 허망할수록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애쓰고 있음이다.
시인에게 삶의 아름다움이란 예술이나 이즘(ism)에 있지 않다. 사소한 일상, 익숙한 자연, 친근한 사람 등 흔한 것들에서 건져 올린 그 무엇이다.
오미자 술의 감동적인 빛깔에 취해 친구를 용서한 술 애호가,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뛰어넘는 라디오 안테나, 길섶에 경이롭게 피어 있는 달개비 꽃이 그러하다. 때론 그것은 실직의 칼바람 속에서 아들 형제를 보육원에 맡기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물이다.
동안(童顔)인 시인은 세상의 탁함에도 찌푸리지만은 않는다. 맑은 언어로 걸러내서 희망의 사금파리를 찾으려 한다. “행복한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 그리움은 때로는 세상과 쉽게 통정(通情)하지 않겠다는 고고한 결의로 읽힌다. 말미에 실린 ‘토막생각들’ 중 하나에서 증거를 찾는다.
‘허구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희망 자체도 허구가 아닐까?’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