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김탁환 교수가 본 '싸이와 대중문학' 논쟁

  • 입력 2001년 4월 27일 19시 10분


제가 동아닷컴에 대중문화칼럼을 쓴다는 걸 아는 지인들이 종종 묻곤 합니다.

"넌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냐?"

퇴근 후 텔레비전을 켜놓고 생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텔레비전만 보는 건 아닙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가족과 외식도 나가지요.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걸 자랑하셨지만(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간이 짧을수록 지식인에 가깝다는 뉘앙스와 함께), 저는 결코 텔레비전을 외면할 생각이 없습니다. 케이블 텔레비전의 시대가 되면서 더욱 그런 마음을 굳혔지요. 두 발 죽 뻗고 편안히 앉아서, 세계풍물기행과 예술가들의 행적과 살인마들을 다룬 논픽션 드라마와 배꼽 잡는 시트콤 '프렌드'까지 보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인 황지우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전 텔레비전 앞에서 명상을 하며 새로운 소설 꺼리를 찾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즈음은 부쩍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대중문화 중에서 어떤 건 칼럼에 담고 어떤 건 칼럼에 담지 않는 건지요?"

선정 기준을 묻는 것이겠지요. 글쎄요. 논리적으로 정한 기준은 없지만, 저는 주로 절 '감동'시킨 대중예술가나 작품들을 택하여 감동의 근원을 글로 옮기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째려보기'란 간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칭찬들이 제법 담기기도 하지요. 그리고 저의 감동을 방해하거나 막는 여러 가지 행태들을 비판하는 글도 씁니다. '칼럼이 지나차게 주관적이다'라는 이-메일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저는 그럴 수밖에 없노라고 답합니다. 객관적인 사실 확인은 신문 기사를 통하면 될 것이고, 저는 다만 텔레비전을 좋아하는 한 게으름뱅이 소설쟁이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감동의 근원을 고민하는 글을 쓸 뿐이니까요.

오늘만 해도 이 질문을 세 차례나 받았습니다.

"싸이는 왜 안 쓰세요?"

확실히 요즈음은 싸이가 어떤 기준인 듯도 합니다. 모일간지에서 전개된 대중문학논쟁에서 대중문학의 '옹호파'와 '비판파'가 갈라졌듯이, 싸이를 좋아하는 편과 싫어하는 편으로 나뉜 것이지요. 제가 그 동안 싸이를 다루지 않은 것은 제 입장이 그 두 입장의 절충이거나 혹은 두 입장이 아닌 또다른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싸이가 가요순위에서 1위를 하고 또 시트콤까지 출연할 예정이니, 그 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싸이가 각광을 받은 이유는 '파격'에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자신이 양아치란 걸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DJ.DOC처럼 사회를 향한 비판정신을 담는 것도 아니고, 지누션이나 원타임처럼 세련미를 추구하지도 않았지요. '완전히 새 되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면서 자신이 생양아치임을 감추지 않습니다.

물론 이 놀자판에도 싸이 나름대로의 비판이 숨어 있긴 하지요. 박지윤이 '성인식'에서 보여주었던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섹시한 춤을 '추하게' 바꾸는 대목이나 '뒤통수 조심해라'며 자신을 버린 연인에 대한 직설적인 공격성을 드러낼 때는, 한참이나 저런 춤과 가사의 의미가 뭘까 되새겨보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싸이가 부르짖는 그 새란 것도, 김삿갓 식의 말장난을 통한 세상 풍자겠지요. '새'라고 했으니 방송출연이 가능하지, 새를 한자로 새겨 그 음(조(鳥))을 빌린 후 거기에 강조의 의미로 'ㅈ'을 첨가한다면, 남성의 생식기를 함부로 부르짖으며 인간을 거시기에 천박하게 비유하였다는 죄명으로 당장 방송금지곡이 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만 해도 방송금지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파격이 싸이 2집, 3집에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싸이의 파격이 충격요법을 통해 남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은 아닐까요? 물론 싸이가 계속 라이브를 고집하며 립싱크 가수들에 대한 비판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높이 사줄 만하지만, 그 외에 번잡한 방송출연이나 가수 외적인 활동은 오히려 자신이 무명 시절에 비판한 그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싸이는 통쾌한 파격을 틀어쥐고 대중문화판을 휘저었지만, 대중문학논쟁에 참여한 몇몇 소설가들은 벌써 예전에 써먹은 인물과 구조를 답습하면서도 큰소리만 칩니다. 대중문화(대중문학을 포함하여)를 우습게 여기는 앨리트주의자들을 향한 비난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겠으나, 자신들의 작품이 과연 그 비난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 나온 소설들을 근거로 비교하자면, 그들은 싸이보다도 훨씬 하수입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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