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비리수사]박노항원사 외출땐 여장…아파트 칩거생활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31분


박원사가 은신해있던 아파트 창문
박원사가 은신해있던 아파트 창문
박노항 원사는 그동안 어떻게 숨어 지냈으며 행동반경은 어떠했을까. 박씨가 은신해 있었던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33동 1113호(32평)에 남겨진 유류품과 주변의 증언 등을 종합해볼 때 그는 1년여의 은신생활 속에서도 대담하게 바깥출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동반경〓박씨의 집에서 발견된 수첩에는 “3월 9일 7시7분 본인의 과실로 자동차 뒷범퍼를 본인 차량으로 받았음”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박씨가 차를 타고 돌아다녔음을 입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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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아파트에는 여성 의류와 구두, 그리고 화장품 등 여성용품이 적지 않게 발견됐고 그가 검거될 당시 잠옷바람에 진흙팩을 얼굴에 바른 채였다는 점으로 미뤄 검찰관계자는 그가 여성차림을 하고 외출해 왔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32평형 아파트는 지난해 1월 12일 50대 중반의 여자가 ‘김순덕’이라는 이름으로 1억원에 2년간 전세계약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관할 동사무소는 “박씨는 물론 김씨도 전입신고가 돼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군검찰은 계약을 한 이 여인이 박씨의 누나이거나 아니면 내연의 여자일 것으로 보고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한편 박씨는 집에 있을 때는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비원 이모씨는 “꼬박꼬박 관리비도 내고 전기와 수도도 계속 사용한 걸로 봐서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한번도 마주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 아파트의 도시가스 검침을 담당하는 최모씨(여)에 따르면 “지난해 7월과 올 1월 초에 가스검침을 하러 찾았을 때는 남루한 옷차림의 50대 여성을 두 번 만났지만 파출부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은신 아파트〓25일 검거된 박씨가 지난 15개월간 살았던 아파트는 은신자의 심리상태를 나타내 주듯 전체적으로 썰렁한 모습이었다. 소파를 비롯한 가구는 하나도 없었고 벽에 걸린 장식품도 없었다. TV가 있는 방에는 불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두꺼운 차광커튼을 한 모습이었다. 침대도 없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 것으로 보였다.

이 아파트에는 안방구석과 작은방 책상 등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국어의 단어와 숙어를 정리해 둔 A4 용지가 수십 장씩 쌓여 있었고 방과 화장실 벽면에도 여러 장씩 붙어 있었다. 어학교재와 테이프, 그리고 영어사전도 있었다. 검찰 수사관들은 이를 근거로 “해외도피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쓴 듯 거실에 청심환, 훼스탈 등 소화제와 헤모글로빈 등 영양제가 널려 있었다. 부엌쪽 벽면엔 건강관련 신문기사를 오려 붙여놓은 것도 있었다. 또 모자가 달린 트레이닝복도 벽에 걸려 있어 검찰 관계자는 “옥상에서 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관들이 이 아파트에 진입하는 모습을 찍은 8㎜ 비디오 테이프에는 일기장으로 보이는 공책도 있었으나 군검찰이 압수해 갔다.

냉장고에는 10끼 정도 먹을 수 있도록 얼려 놓은 곰국과 쇠고기 등 각종 고기류가 있었고 김치 치즈 딸기 등과 만들어 놓은 계란말이도 있었다.

<이명건·민동용·김창원기자>gun43@donga.com

▼박원사 누구인가▼

25일 검거된 박노항(朴魯恒·50)원사는 병무비리의 ‘몸통’으로 알려진 인물. 한때 ‘대한민국 병역면제는 박노항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로 병역면제를 포함한 군내 보직 이동, 카투사 선발 등 병무비리에 광범위하게 개입한 ‘해결사’로 알려졌다.

98년 5월 이후 35개월간의 도피생활로 탈옥수 신창원(申昌源·34), ‘고문 경관’ 이근안(李根安·63)과 함께 ‘도망자 3인방’으로 불렸고, ‘불사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아직도 현역 신분이지만 탈영한 상태로 간주돼 98년 6월1일자로 급여 지급은 중지된 상태.

박원사는 70년 1월17일 하사로 임관한 헌병수사관 출신으로 육군본부 범죄수사단 등 헌병의 핵심 요직에서 27년간 근무하면서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폭넓게 친분관계를 맺었다.

그의 비리는 98년 5월 국방부 검찰단이 카투사 입대 청탁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포착됐다. 당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소속의 원용수(元龍洙·55)준위에게서 1억7000만원을 받고 12명의 병역을 면제시켜준 혐의가 드러난 것.

그는 곧바로 종적을 감췄으나 수사가 계속되면서 그가 개입한 병무비리 건수는 100건 이상으로, 수뢰(受賂)액은 100억원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박원사는 ‘특별전담반’의 추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검경의 체포망을 뚫고 다녔다. 3년 동안 그의 행적에 대한 시민 제보만 150만건에 이르렀고, 수배전단도 100여만장이 뿌려졌다. 또 해외도피설, 군 내부 비호설, 성형수술설 등 그를 둘러싼 갖가지 루머도 끊이지 않았고 200만원이었던 현상금도 2000만원으로 치솟았다.

82년 부인과 이혼한 후 독신생활을 해온 박원사는 4, 5명의 여인과 내연의 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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