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금리가 기가막혀"…실질이자율 물가상승률 못미쳐

  • 입력 2001년 4월 15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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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퇴직금 2억원을 은행에 넣어 둔 황모씨(64)는 요즘 통장에 찍힌 이자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자소득이 월 200만원은 넘어 그럭저럭 생활비 충당은 됐는데 요즘은 월 이자가 세금을 제하면 약 80만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환율 상승으로 물가가 5%대까지 상승해 물가 상승으로 날아가는 돈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투자’를 해 온 꼴이다.

황씨의 경우에서 보듯 물가는 오르고 예금 이자는 계속 떨어지면서 은행 예금자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소비심리를 자극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부동 자금이 단기 투자를 선호하는 탓에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들지 않아 ‘고물가 저성장(스태그플레이션)’현상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5일 한국은행과 금융권에 따르면 2·4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해 은행권 수신평균금리는 2월 5.43%에서 3월과 4월에는 5.2%에서 5.3%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이 경우 이자소득세(16.5%)를 떼고 나면 세후 이자는 4.4%에 그치게 되며 5%에 육박하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저금리는 기업의 신용 위험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들이 국고채 등의 안전 자산 투자에 치중하면서 국고채 금리가 떨어진데다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과거에 빌린 돈을 은행에 상환할 정도로 자금 수요가 준 데서 비롯됐다.

하나은행 김성엽재테크팀장은 “은행들이 운용 수단이 없어 예금받기를 꺼리는 상황이어서 저금리로 인한 실질금리 마이너스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급기야 실질금리 마이너스에 따른 부작용도 서서히 거론되고 있다.

조재환(趙在煥)민주당의원은 “저금리 정책이 의도하는 경기 부양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기업 자금 단기화만 부추기고 있다”며 “일본의 경우처럼 경기 진작이 필요해 금리를 낮추어도 약발이 나타나지 않는 부작용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즉 경제 정책 당국이 정책결정을 하는데 운신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금리가 낮다보니 ‘차라리 쓰고 보자’는 소비심리가 확산돼 물가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실질 이자율로 따지면 우리보다 높은 미국재무부채권 등 해외 채권을 선호하게 되면서 외국 투자처를 찾아 국내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자금은 3월 은행권에 3조5000억원 가량 신규 유입되고 주식시장과 투신권 등으로는 오히려 자금 유입이 줄어들어 자금 흐름의 왜곡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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