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매향리 판결, 국익보다 주민기본권 우선 인정

  • 입력 2001년 4월 11일 18시 26분


법원이 11일 ‘매향리 미공군 사격연습장’의 소음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주한미군의 군사훈련에 따른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안보’나 ‘국익’이라는 명분에 가려져 있던 주민의 ‘기본권’이 더 이상 무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의미도 크다는 지적이다.

3년여 동안 계속된 재판의 핵심 쟁점은 매향리 주민들의 ‘소음피해’가 폭격소음으로 인한 것인지(인과관계 문제)와 그 피해가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한계를 넘는지의 여부였다.

재판부는 “매향리 지역의 소음 수준은 공항소음 피해지역이나 공업지역만큼 높아 주민들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라며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의 판단에는 이 지역의 하루 평균 소음도가 청력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72.2㏈에 이른다는 99년 아주대 연구팀의 역학조사와 감정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재판부는 민법상 불법행위(피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95년 2월부터 소송이 제기된 98년 2월까지 3년간의 손해배상만 인정했다. 또 오폭(誤爆)에 대한 불안감이나 개발제한 등에 따른 피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은 국민의 인권과 환경권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을 환영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 판결을 근거로 매향리 지역에서 발생한 지난 50년간의 인명피해와 환경피해 실태를 전면 재조사, 정부와 미군에 배상과 원상회복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잘못에 대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밖에 없도록 한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이 또다시 개정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공무수행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발생,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경우 한국 정부는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 일단 이를 배상해야 한다. 그 후 미국측에 민사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그것도 배상액의 75%밖에 돌려받을 수 없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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