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슬랩스틱, 원래는 대나무 몽둥이를 일컫는 말

  • 입력 2001년 4월 10일 11시 31분


'경쾌하게 발을 맞춰 좌우로 움직이며 춤을 추던 두 명의 코미디언. 갑자기 한 명이 돌아서서 이유없이 함께 춤추던 동료의 뺨을 때린다.'

이제는 '그 시절 그 쇼' 같은 특별한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원로 코미디언 콤비 남철-남성남의 대표적인 연기중 하나이다.

말로만 설명하면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지만, 적절한 타이밍과 과장이 가미된 이 연기는 늘 객석의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처럼 논리적이거나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고 과장된 코미디 연기를 우리는 흔히 '슬랩스틱 코미디'라고 부른다.

코미디의 '저질성'을 비판할 때나, 또는 그 속에 담긴 웃음의 철학을 칭찬할 때 언론에서 즐겨쓰는 슬랩스틱이란 단어는 과연 무슨 뜻일까?

영어로 '철썩 때린다'는 의미의 ‘슬랩’과 몽둥이란 의미의 ‘스틱’이 합쳐진 ‘슬랩스틱(slapstick)’은 원래 유랑극단의 광대가 연극을 할 때 소도구로 쓰던 대나무 몽둥이를 뜻했다.

'보드빌쇼'라고 불렀던 19세기 유랑극단에서 관객의 흥을 돋구기 위해 광대는 이 몽둥이로 자신을 때리거나 자신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자기 학대'의 도구로 활용했던 것.

넘어지고 때리는 등 과장된 희극 연기에 사용되면서 '슬랩스틱'이란 말은 이후 아예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희극 장르를 뜻하는 말이 됐다.

영화가 대중오락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1910년대 미국의 배우겸 코미디언 맥 세네트는 쇼 무대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처음으로 영화에 도입했다.그는 과장되고 수선스러운 연기 속에 은근한 사회 풍자와 반골 정신이 담긴 밀도 있는 작품을 발표해 당시 이런 코미디의 주된 관객이었던 노동자층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로스코 아바클, 메벨 노맨드,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막스 브러더스 등이 등장하면서 슬랩스틱 코미디는 전성기를 이루었다.찰리 채플린은 떠들썩한 웃음이 전부이던 슬랩스틱 코미디에 잔잔한 감동과 페이소스를 담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고, 4명으로 구성된 막스 브러더스의 정교한 슬랩스틱 코미디는 요즘도 영화학도들의 분석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말보다 몸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발성영화가 나오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40년대 미국 영화를 통해 유입된 후 극장 쇼가 활성화 되던 50년대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특히 69년 8월부터 MBC에서 방송을 시작한 <웃으면 복이 와요>는 극장 무대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안방극장에 소개해 큰 인기를 얻었다.

배삼룡, 남철, 남성남, 이기동 등이 그 시절 인기가 높았던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가들.그러나 정교한 인과관계 없이 벌어지는 과장된 연기는 70년대 들어 저질 코미디 논쟁을 유발했고, 이른바 '개그맨'들이 등장하면서 급격한 쇠퇴를 보였다.

하지만 슬랩스틱 코미디는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맥을 이어왔고, 오히려 최근에는 신세대 개그맨들이 <개그 콘서트>나 <코미디닷컴>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형태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

김재범 oldfield@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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