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윤리가 경쟁력이다-1]"고객 우선" 다짐하는 존슨&존슨

  • 입력 2001년 4월 1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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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를 잘 지키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기업윤리가 경쟁력의 새로운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경영과정이 투명하고 다수의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갈수록 발전한다는 것. 이런 기업은 사회를 밝고 맑게 만드는 주인공 역할을 한다. 한국기업은 어떤가. 상당수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부패에 얼룩지면서 돈벌이에 급급했다. 이런 기업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마침내 잇달라 쓰러졌다. 일부 기업들은 정경유착의 온상이기도 했다. 기업윤리를 잘 실천하는 우량기업들을 조명함으로써 불투명성과 부패문제로 한계에 부닥친 한국기업들에 도약의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털어 먼지 안나는 깨끗한 기업'이 한국사회에서 '소금'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미국 뉴욕에서 차로 한시간 반 남짓 걸리는 조용한 소도시 뉴브런즈윅.

1880년대 이곳에 뿌리내린 세계적 의약품 및 생활용품 생산업체 ‘존슨&존슨’의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석판에 새겨진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만나게 된다. 1943년 이 회사 설립자의 손자인 로버트 존슨이 처음 명문화한 ‘우리의 신조’는 미국식 기업윤리강령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글 싣는 순서▼
1. 존슨&존슨
2. 3M
3. 美 기업평가 시스템
4. 다국적 기업 나이키
5. 사우스웨스트
6. 조지아 퍼시픽 펄프공장
7. 네슬레
8. 노키아
9.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10. 전문가 좌담-독자 반응

50년 이상 윤리강령을 경영에 반영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미국에서도 존슨&존슨은‘기업윤리’(business ethics)분야의 선두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자칫 그럴싸한 웅변에 그치기 쉬운 윤리강령이 존슨&존슨 기업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떠오른 데에는 ‘타이레놀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타이레놀 사건의 교훈〓1982년 미국 시카고지역에서 ‘초강력 타이레놀’ 제품을 복용한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은 1970년대에 개발돼 당시 존슨&존슨의 총매출의 7%, 순이익의 17%를 차지하던 주력상품.

경찰 조사결과 사망자가 먹은 타이레놀에 독극물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존슨&존슨은 즉각 소비자들에 대한 책임을 앞세운 자신들의 ‘신조’에 맞춰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자체적인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고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초강력 타이레놀 제품을 절대 먹지 말도록 대대적인 홍보를 개시했던 것.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독극물이 주입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문제가 된 시카고지역에 배포된 제품을 거둬들일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존슨&존슨은 역시 ‘신조’에 따라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제품 3000만병, 총 1억달러(약 1300억원) 상당의 상품을 전국에서 스스로 모두 거둬들였다.

“당시 사내에서는 ‘타이레놀’ 브랜드를 포기하자는 주장도 나왔죠. 하지만 경영층은 신조에 맞춰 대응한 만큼 소비자들이 우리를 믿어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존슨&존슨의 인적자원관리 부문 마이클 커리 부사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존슨&존슨의 윤리적 태도를 신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결과적으로 타이레놀은 현재까지 미국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해열진통제로 살아남았고 세계적으로 연간 15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상품이 됐다.

커리 부사장은 “다른 ‘꼼수’를 생각했다면 존슨&존슨은 시장에서 신뢰를 잃어 기업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웠을 겁니다. 신조가 우리 기업을 살린거죠”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타이레놀 사건과 존슨&존슨의 대응은 미국 경제계 및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기업 윤리’가 이름뿐인 신조가 아닌 ‘위기대처 능력’의 결정적인 요소로 부각된 것. 비즈니스 스쿨들이 잇따라 기업윤리 과목을 개설했고 미래의 경영자들에게 기업윤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게 됐다.

▽중대한 정책결정은 ‘신조’에 따라〓 “‘우리의 신조’는 가장 효과적인 ‘경영의 도구’입니다.” 존슨&존슨 업무실행위원회 러셀 디요 위원의 설명이다.

존슨&존슨은 ‘우리의 신조’에 맞춰 정책결정을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끊임없이 교육하고 있다. 소비자 직원 지역사회 주주로 이어지는 윤리강령의 ‘우선순위’에 따라 정책결정을 내린다는 것.

디요 위원은 3년전 세계적으로 20여개 공장의 문을 닫을 때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선 생산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할 수 있을지 판단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직장을 잃게 될 직원들에게 충분한 전업의 기회나 보상을 줄 수 있는지 살폈죠. 다음으로는 그동안 뿌리내리고 있던 지역사회 주민들과 만나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경영을 개선해 주주들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었죠.”

존슨&존슨에는 ‘우리의 신조’와 함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과정이 한가지 더있다.‘빨간 얼굴 테스트(Red face Test)’라 불리는 불문율이 바로 그것. 자신이 내린 결정이나 행동을 자기 가족에게 얼굴을 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윤리적’이었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생각의 속도’로 돌아가는 시대에 윤리성을 고려함으로써 의사결정과정이 늦어져 기업의 경쟁력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존슨&존슨의 매뉴얼은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 “윤리적 문제를 고려할 만큼 중요한 사항을 결정해야 할 때, 그때가 바로 ‘속도를 늦출(slow down) 때’이다”라고.

<뉴브룬스윅(미국)〓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본사 로비 벽면의 '우리의 신조'

▼존슨&존슨 '우리의 신조'(Our Credo)▼

우리의 첫째 책임은 우리 상품과 서비스를 찾는 의사 간호사 환자 환자가족 등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우리 상품은 항상 최고 품질이 유지돼야 한다. 우리는 적절한 상품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원가를 줄이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고객의 주문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우리 제품을 취급하는 사업자도 정당한 이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둘째 책임은 전세계 어디서나 우리와 같이 근무하는 모든 남녀 직원에 대한 것이다. 모든 직원은 각자가 한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중시하고 각 개인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직원이 안심하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우는 정당하고 적절해야 하며 근무환경은 청결하고 잘 정돈되고 또한 안전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직원이 그들의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세심히 배려해야 한다. 직원들은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고충을 토로하는 데 자유로워야 한다. 직원의 채용 능력계발 승진 등에서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 우리는 우수한 경영진과 관리자를 확보해야 하며 경영관리는 공명정대하고 도덕적 바탕 위에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셋째 책임은 우리가 생활하고 근무하고 있는 지역사회는 물론 세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이 돼야 하며 선행과 자선을 베풀고 적절한 세금을 내야 한다. 우리는 사회의 발전, 건강과 교육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특별히 제공된 모든 시설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 유지하고 환경과 천연자원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책임은 회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의 사업은 건전한 이익을 올릴 수 있어야 하며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창출해야 한다. 연구개발을 계속 수행해야 하고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하며 실패할 경우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장비를 구입해야 하며 새로운 시설을 제공해야 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역경에 대비한 대책을 항상 강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원칙에 따라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주주들이 정당한 이익배당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문가가 본 존슨&존슨 "상표 초월한 신뢰의 상징" 자부심▼

“존슨&존슨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상표(trade mark)가 아니라 가장 윤리적이고 모범적인 기업이라는 ‘신뢰의 마크(trust mark)’입니다.”

존슨&존슨에서 만난 한 직원이 ‘우리의 신조’ 얘기를 나누다 자기 회사를 자랑하며 내비친 얘기다.

한국 기업의 윤리담당자로 직원들에게 기업윤리를 교육하는 입장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기업윤리’라는 딱딱한 내용이 임직원 모두의 가치관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50년 이상 유지해온 강령이라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 많은 투자와 지속적인 교육이 빚어낸 결과였다.

“한국 기업이 왜 ‘기업윤리’같은 걸 궁금해합니까”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윤리적 경쟁력’인 기업의 투명성이나 소비자들에 대한 책임, 주주들에 대한 의무 등이 그들에게는 새로울 것도 없이 몸에 밴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의문일 것이다.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담당하는 존슨&존슨의 한 임원은 이런 얘기도 했다.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을 돕는 프로그램을 1980년대 후반에 개발해 시행하는 등 ‘내부고객에 대한 윤리’부분을 확립함으로써 미국내에서도 최고의 인력을 유치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기업윤리의 범위를 단지 직원들의 부패문제 등에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미국 경제가 급성장한 기업들이 1980년대를 주름잡던 일본경제를 이겨낸 이유 중 하나로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꼽는 전문가들이 있다. 30대 기업중 기업윤리강령을 채택한 기업이 10여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대부분 선언적 문구로 채워 서랍안에 묻어두고 있는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직후 한 국내 기업이 외국기업으로부터 투자자금을 유치하려는 과정에서 “윤리강령조차 없이 경영하는 기업에 뭘 믿고 투자하겠느냐”는 얘기를 듣고 허겁지겁 윤리강령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기업윤리는 이미 단순한 홍보성 문구나 선언적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고 있다.

김정식(신세계 기업윤리실천사무국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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