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3월 29일 18시 3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본보 취재팀이 30년 전의 진실을 추적하고 있는 한 무기수의 사연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수사상 위법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피고인의 고통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강도 강간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2, 3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 김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수사기관의 소홀한 인권의식을 지적한 것이다.
96년 사건 당시 검찰은 김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왔는데도 이를 숨기고 김씨에게 불리한 증거만 1심 재판부에 제출해 중형을 선고받도록 했다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권력인지 말문이 막힌다.
다행히 2심 재판부가 다시 유전자 감식을 의뢰해 김씨는 1년여 만에 풀려났고 손해배상소송에서도 이겼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경찰과 검찰의 억지 수사, 1심의 유죄판결은 김씨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김씨는 출소 후 대인기피증이 심해져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친척들도 지금 그의 행방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담당검사는 “피해자의 진술 등 당시 김씨를 범인으로 간주할 수 있는 정황증거가 많았는데 예상 밖의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와 이는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는 보도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이런 식이라면 검찰에 계속 공소권을 맡겨도 되는 건지 의문이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지적했듯이 검찰과 경찰은 범죄수사를 통한 사회방어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인권보호 의무도 함께 진다. 그러자면 적법 절차와 과학적 수사가 필수적이다. 가뜩이나 정치 검찰이란 의심을 사고 있는 터에 일반 형사사건 수사에서도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검찰은 정말 설 땅을 잃게 된다.
문제는 빗나간 공권력의 피해자가 어디 김씨뿐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그저 ‘과거의 일’로 넘겨버려선 안된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 가운데 0.1% 정도는 지금도 무죄선고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번 판결을 타성적인 수사관행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