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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1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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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연구소, 대기업, 바이오 벤처에서는 “이제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보다는 서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높다. “2, 3년만 지나면 선진국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이 더 많다.
정부부처간에도 감정의 골이 깊다. 바이오산업 육성 방법을 둘러싼 견해차이보다는 ‘어느 부처가 바이오 정책을 주도할 것이냐’ 하는 밥그룻 싸움의 성격이 짙다.
▽모두가 합의하는 ‘비전’과 ‘전략’이 필요〓업계와 연구소에서는 “정부 기업 학계 모두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바이오 육성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안두현 박사는 “7개 부처, 특히 과기부 산자부 보건복지부가 바이오 주무부처임을 자임하면서 업무가 중복되고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지경”이라고 말했다. 제도적으로는 과학기술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바이오기술산업위원회’가 있지만 각 부처의 정책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관료주도의 정책에도 비판적이다. 생명공학연구원 이대실 박사는 “전문성이 결여된 관료들이 결정을 내리다 보니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로비를 하고 관료들은 뒷소리가 나오는 것이 싫어 모든 분야에 예산을 나누어주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은 이런 정책실패를 피하기 위해 최고의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위원회를 구성, 이들이 중요하다고 합의한 분야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있다. 기술정책은 최고의 전문가 몇몇이 결정을 내리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이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집중화’ 전략이 유효〓일본 인간게놈해석연구센터소장 나카무라 유스케(中村祐輔) 박사는 “필요한 예산의 10분의 1을 들이면 10분의 1의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게놈연구에서는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예산은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비가 투여돼야 만 성과가 나온다는 설명.
그러나 국내 정책은 ‘코끼리 비스킷’ 나누어주기 식으로 정부예산이 ‘얇고 넓게’ 쓰이고 있다.
충남대 식물자원학부 임용표 교수는 “바이오 연구결과는 곧 물질특허로 이어지기 때문에 2등과 꼴찌는 마찬가지”라며 “이에 따라 우리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벼게놈해석 국제컨소시엄에 참여했다가도 국가적 지원이 부족해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것이 대표적인 예.
크리스탈지노믹스 조중명 사장은 “신약개발, 단백질연구 등 투자액에 비해 보상이 큰 분야에 정부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쓸데없는 분야에 대한 지원이 많다”며 “발언권이 세거나 정부출연 연구소에 지원이 집중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과학기술부 정윤 연구개발국장은 “한국인 질병유전자 규명, 자생식물 유전자원 활용 등 정부 나름대로 집중화 전략을 펴고 있다”며 “과학자들이 ‘집중화’를 말하면서 각론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자기분야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도 집중화가 필요하다. 강원대 생물학과 허원 교수는 “정부가 바이오벤처 기업을 몇백개 키우겠다는 양적인 정책을 펴다가는 정보기술(IT)벤처처럼 거품후유증이 예상된다”며 “바이오벤처는 IT벤처보다 투자비도 많이 들고 투자비 회수기간이 긴 만큼 엄격한 기술심사를 통과한 벤처기업에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산학연 R&D’ 협력모델 만들어야〓산업정책연구원 안두현 박사는 “자동차나 전자 등 다른 산업과 달리 바이오산업은 실험실의 연구결과가 바로 상업화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산학연의 협력시스템이 중요하다”며 “각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없다 보니 각자가 짜증을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물산업협회 김문기 부장은 “결국 바이오산업은 대기업이 주도해야 하는데 국내 대기업은 정부 지원만 바라면서 자신의 변신에는 늦다”며 “바이오시대는 과학적으로는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산업경쟁력이 없을 경우 국가적으로는 ‘악몽’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병기·정위용기자·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