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맛있는 수다]나를 슬프게 한 생일날 미역국

입력 2001-03-12 13:54수정 2009-09-21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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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벌써 서른살이나 먹었더라구요. 그런데 이번 생일은 서른살 생일이라는 것말고도 저에겐 정말 특별한 생일이었어요.

생일을 병원에서 보냈거든요. 잠깐 입원할 일이 있어 병원에 들어간 날이 하필 제 생일이였던 거예요. 단식을 하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 때문에 생일상은 꿈도 못 꾸고 꿀꿀하게 침대에 누워 이생각 저생각 하다보니 글쎄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 못먹은 거예요. 이럴 수가!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미역국은커녕 아침밥도 못 먹은 거죠. 세상에! 남편이란 작자가 아내 생일에 미역국도 안 끓여주고 내빼다니! 난 자기 생일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미역국이랑 밥이랑 해줬건만...남편 다 소용 없구나...싶더군요.

사실 생일날 아침마다 먹는 미역국에 특별한 감상 같은 건 없었는데 그마저도 못 얻어먹고 나니 세상 헛산 것 같고, 왜 그렇게 비참해지던지요. 별 것도 아닌 미역국 한 그릇 때문에 잠시 우울해졌답니다.

결혼하기 전엔 생일날 아침에 꼭 미역국을 먹고 나갔어요. 미역을 물에 불리고 고기랑 참기름이랑 달달 볶다가 물을 붓고 한참을 끓이는 거죠. 그럼 온 집안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면서 개운하고 든든한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죠. 우리 신랑은 무슨 멋인지 "애 낳은 여자들이나 먹는 국"이라며 미역국을 싫어하지만 전 미역국을 참 좋아하거든요. 제가 맛있게 끓일 수 있는 몇 가지 안되는 국 중의 하나이기도 하구요.

미역국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은 국간장과 마늘에 있는 것 같아요. 국간장이 맛있으면 국물 맛이 웬만큼은 맛있게 나와요. 또 다진 마늘을 듬뿍 넣으면 정말 개운한 국물맛이 되구요. 고기를 싫어하시는 저희 친정 아빠 때문에 저희 집에선 미역국에 고기를 넣지 않고 끓이기도 해요. 그냥 불린 미역에 들기름을 두르고 들들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는 거죠. 고기를 넣지 않은 미역국은 맛이 더 담백하고 개운한데다가 국물도 깨끗해서 보기 좋아요.

결국 올해는 생일이 지난 다음에 미역국을 먹었어요.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에 하얀 쌀밥을 먹다보니 서른살이나 먹었건만 엄마 아빠 생신에 미역국 한번 끓여본 적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어요. 시아버지, 시어머니 생신엔 온갖 요란을 떨며 미역국을 끓여 나르면서 정작 날 낳아주신 엄마 아빠 생신에 미역국을 끓일 생각도 못했더라구요. 이런 못된 딸이 있나!

내 생일은 끔찍이 챙기면서 부모님 생신엔 저녁 얻어먹을 궁리만 하는 이 뺀질이 딸, 어쩌면 좋죠? 좀 있으면 다가올 엄마 생신엔 꼭 미역국을 끓여드려야겠어요.

***생일상을 빛낼 미역국 만드는 법***

재 료 : 미역 100g, 쇠고기 300g. 다진 마늘 1큰술, 간장, 소금, 후춧가루

만들기 : 1. 미역은 물에 담구어 불린다.

2. 쇠고기에 간장, 다진 마늘, 후춧가루를 넣어 조물조물 양념한다.

3. 미역이 불려지면 손으로 주물러서 깨끗이 씻은 후 6cm 길이로 잘라 준비한다.

4. 쇠고기와 미역을 달구어진 냄비에 넣어 볶는다.

5. 뽀얀 국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물을 부어 충분히 끓인다.

6. 한소큼 끓으면 간장과 소금으로 양념한다.

ps. 결혼을 하고 난 뒤엔 무슨 심술인지 꼭 남편이 끓여주는 생일 미역국이 먹고 싶더라구요. 우리 신랑은 결혼하고 처음 생일엔 한번 끓여주더니 그 다음부턴 즉석 미역국을 사들고 들어오더군요. 남자들은 '여자들만 살기 편한 세상' 됐다고 투덜거리지만 제가 보기엔 남자들도 상당히 살기좋은 세상 된 것 같아요.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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