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일씨의 이메일 전문

  • 입력 2001년 3월 12일 11시 26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정상회담을 끝낸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대중대통령을 `this man'으로 부른 것이 무례한 표현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는 한국언론보도를 보고 정상회담을 지켜본 미국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부시대통령이 김대통령을 가리켜 'this man'이라고 한 것은 직역하면 "이 분", 의역하면 "이 대단하신 분", "이 훌륭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홍사덕 국회부의장은 this man이 "이 양반"이라는 표현이라면서 부시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냈다는데 큰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영어 man은 예사말로는 '사람' 높임말로는 '분' 낮춤말로는 '양반'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부시대통령이 김대통령을 가리켜 this man이라고 한 표현이 "이 양반"이 아니라 "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사회에서도 처음 보는 교양있는 성인들 간에 타인을 가리킬 때는 "이 사람", "저 사람"이 아닌 "이 분", "저 분" 이라고 호칭합니다. 하물며 미국대통령이 처음 만나는 한국대통령을 'this man'이라고 호칭한 것을 '이 사람'도 아닌 '이 양반'으로 해석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발상입니다.

둘째, 부시대통령이 이 표현을 사용한 전후관계 (context)입니다. 부시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 첫마디로 "김대통령께서 백악관을 방문하시어 영광입니다" (It's been my honor to welcome President Kim here to the Oval Office.) 로 시작했습니다. 그후 김대통령을 "대통령 각하" ( Mr. President)로 계속 호칭했으며 또 중간에 김대통령이 부시대통령의 방한을 바란다고 말하자 부시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Thank you, sir."라는 극존칭을 사용했습니다. 한 국가 원수가 다른 국가원수에 대해 "sir" 라는 존칭표현을 사용하는 예는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회견내용 문맥을 고려할 때 this man을 "이 양반"으로 풀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셋째, 영어 man은 위대한 인물이나 추모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흔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링컨에 관한 논문의 일부 내용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countless books about Lincoln are proof of the continuing recognition of the greatness of the man. We are going to learn the history of that great man. 링컨에 관해 무수한 책이 발간됐다는 것은 그 분의 위대함이 계속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그 위대한 분의 역사를 배우고자 한다. 여기서 man을 '양반'으로 번역해 보시기바랍니다. 전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유명인사의 장례식 추도사에는 "He was a good man."이란 표현이 자주 사용됩니다. "그는 좋은 양반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분이셨습니다." 어떤 해석이 맞습니까?

넷째, 미국이 서방 예의지국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청교도적인 겸손과 예의가 미덕인 나라입니다. 만의 하나 부시대통령의 this man이 홍의원의 해석처럼 '이 양반'이라는 무례한 낮춤말이었더라면 7일 기자회견이 끝난 즉시 모든 미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을 것입니다. 10일 현재까지 미국언론에서는 this man과 관련해 한마디도 언급된 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this man이 왜 단순히 '이분'이 아니라 '이 대단하신분, 훌륭하신분'으로 의역을 해야하는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문제의 this man이 사용된 부시대통령의 기자회견문을 직접 살펴봅니다.

It's been my honor to welcome President Kim here to the Oval Office. We had a very good discussion. We confirmed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our two countries. We talked about a lot of subjects. And we'll be glad to answer questions on some of those subjects, but first let me say how much I appreciate this man's leadership in terms of reaching out to the North Koreans. He is leading, he is a leader. He is -- and we've had a very frank discussion about his vision for peace on the Peninsula.

보다시피, 부시대통령은 김대통령의 리더쉽과 한반도평화에 관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사덕 국회부의장이 김대중대통령에 대해 의례적이든 진심이든 국가원수로서 최대한의 존경을 표시한 부시대통령에게 "'이 양반'이란 표현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없을 경우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면서 항의서한을 보낸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한국 국민의 영어실력에 대한 긍지에 먹칠을 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전수일

자유아시아방송

워싱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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