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무섭지 않은 화장실 귀신 괴담<하나코>

  • 입력 2001년 2월 28일 11시 41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교 화장실'은 가장 확실한 공포의 수원지다. 밀실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쾌감, 폐쇄된 공간에서 오는 억압성. 학교 화장실에는 온갖 기괴한 전설과 믿어지지 않는 소문들이 더러운 오물과 함께 기생한다. 일본영화 <하나코>는 바로 이점을 모티프로 심란한 괴담 한자락을 을씨년스럽게 풀어놓는다.

미도리다이 중학교 입학식. 한 여자아이가 음산한 목소리로 이 학교 화장실에서 나타난다는 귀신 하나코의 정체를 살짝 귀띔해준다.

"다들 하나코의 정체를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에 대해선 쉽게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죽게 되기 때문이다." 대충 이런 식의 내레이션이 끝나면 본격적인 '공포의 재현'이다.

신입생답게 적당히 들떠 있는 사토미(마에다 아이)와 카나에(하마오카 마야)는 "절대 그녀에 대해 말하면 안된다"는 법칙을 어기고 하나코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은 호기심 많은 10대답게 하나코의 정체를 알고 싶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포의 화살은 그녀들에게 향한다. 화장실 거울에서 정체 모를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이고 학교 뒤뜰에 있는 사당에서 누군가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따지고 보면 사토미와 카나에는 '하나코'와 질긴 인연으로 맺어져 있었다. 11년 전 발생한 사토미 언니의 실종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그녀가 화장실에서 하나코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카나에는 사토미 집안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친구였으며 사토미와 카나에의 담임을 맡고 있는 야베 선생님(나가노 히로시)은 이 학교 출신이자 11년 전 사토미 언니의 절친한 친구였다.

<하나코>는 학원 공포물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 영화답게 짐짓 음산한 분위기로 관객의 숨을 조른다. 하지만 이것은 러닝타임 약 30분까지만 유효하다. 사토미, 카나에, 야베 선생님이 줄줄이 화장실에서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사건의 원인이 하나코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선지 <하나코>의 음산한 공포는 오래가지 못한다. 겁 없는 아이들이 '분신사마'라는 이상한 주술을 통해 귀신을 불러낸 후부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져다 주는 묘한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모티프를 다룬 한국 공포영화 <여고괴담>이 이 영화보단 분명 한 수 위다. <여고괴담>은 익숙한 학교 괴담을 학내 비리에 얽힌 사회문제로 멋지게 승화시켰지만 <하나코>는 그러지 못했다. 귀신이 출현한 후부터 훨씬 긴박감이 넘치는 <여고괴담>과 달리 이 영화는 귀신이 출연하면서부터 오히려 더 긴박감이 떨어진다.

그건 아무래도 <하나코>가 귀신의 정체를 '짐작 가능한 것'으로 일찍부터 한정해 두었던 탓이 크다. 90년대 일본 전역을 들끓게 했던 청소년 엽기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 <학교괴담>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영화는 <링>의 시나리오 작가 다카하시 히로시가 각본을 맡아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 그러나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 영화는 철 지난 옷처럼 촌스러운 공포만 자아낼 뿐이다.

(감독 츠수미 유키히코/주연 마에다 아이, 하마오카 마야, 나가노 히로시/각본 다카하시 히로시/개봉일 3월3일/등급 12세 이용가/러닝타임 95분/홈페이지 주소 http://www.woosungcine.com)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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