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만의 종교이야기]지하철 소음과 영적인 울림

  • 입력 2001년 2월 19일 21시 44분


지하철에서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듣는 이가 내 곁에 오면 난 으레 다른 곳으로 피한다. 리시버에서 나오는 소리가 마치 모기떼가 앵앵거리는 것 같아 듣기 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울리는 휴대폰의 각양각색 신호음과 시끄럽게 통화하는 소리에는 별 대책이 없어 참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상품판매원의 고함소리까지 가세해 내 귀를 어지럽히게 되면 그 동안의 인내심은 사라지게 된다.

수메르 신화 한 편이 떠오르는 것은 이 때다. 지금부터 4000여 년 전에 쓰여진 지우쑤드라의 홍수 이야기 가 그것이다. 기독교 경전인 바이블 의 창세기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가 바로 이 수메르 신화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다.

이 신화에는 인간들이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신들이 쉴 수 없게 되자 신들의 왕인 엔릴 이 홍수를 퍼부어 땅을 잠잠하게 만드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소음은 강력한 신들조차 편히 쉴 수 없게 만드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소음이라도 종교의례에서는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중남미 인디언의 풍요의례에서 신의 강림을 알릴 때 시끄러운 폭죽을 터뜨리는 것이나, 동방정교회의 예배 때 시만드론 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짤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 그런 경우다. 여기서 소음은 의례의 중요한 순간에 참가자들이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종교에서 더 중요하게 사용하는 소리는, 보통의 소음을 중간지대로 할 때, 그 양극에 있는 영역이다. 즉 보통의 소음에 비해 박자(拍子)가 있고, 훨씬 더 크고 빠른 소리의 영역이든지, 아니면 정반대로 통상의 소리에서 단절된 침묵의 소리 영역이 그것이다.

파도처럼 휘몰아대는 강렬한 박자의 소리를 내는 것은 주로 타악기가 담당한다. 대표적인 악기가 바로 북이다. 둥둥 울려대는 북소리의 리듬이 의례의 절정을 향해 점점 고조되면 의례 참가자들의 심장 고동소리도 이에 따라 높아져 가고, 결국 초월적 세계와 인간세상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나타난다. 이 때 규칙적으로 인간의 피부를 꿰뚫고 온몸을 휘젓는 소리 그 자체가 바로 신적 존재와 동일시된다.

이와는 달리 통상적인 말과 소리를 통하지 않고 초월의 세계를 경험하는 또 다른 방식이 바로 침묵을 통한 것이다. 침묵의 방법은 외부의 번잡한 소리를 차단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다. 침묵이 소리의 결핍이라기보다는 소리의 충만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제한된 소리의 영역을 쾌적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가끔 그 영역 밖의 소리를 듣게 되면 금방 짜증을 낸다. 그러나 소음지대를 가운데 두고 인간을 신성과 이어주는 두 가지 강렬한 영역이 있으며, 소음도 가끔은 유용하게 쓰인다는 생각을 한다면 시끄러운 지하철도 조금은 더 견딜만하게 되지 않을까?

장석만(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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