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엄마의 와우! 유럽체험]중세의 보석 밤베르그

  • 입력 2001년 2월 9일 16시 37분


뉘렌베르그로 가는 길에, 밤베르그에서 하루 묵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던 독일이지만, 이 작은 마을만은 전화를 피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기에...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바로 곁에 있는 바그너의 고향 바이로이트도 매혹적이지만, 옛 고도의 정취를 맛보고 싶어 이곳에 여장을 푼 것입니다.

밤베르그의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겨울저녁의 어둠 속에서 밤베르그 시가지로 진입할 때, 레그니츠 강 한가운데 발그레한 불빛 속에 떠있던 옛 시청사 건물...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로 둘러싸인 모습은 비단 천을 두른 듯 화려해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날씨가 너무 쌀쌀해 나우의 월동장비를 꺼냈습니다. 비바람이 심한 독일에서는 아이들 유모차에 비닐 커버를 씌우게 되어 있거든요. 이 비닐커버는 유모차 위에서 시작해서 바퀴 부분까지 완벽하게 바람을 차단해 주면서, 아이의 시야를 가리지 않아 이럴 때 안성맞춤입니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좁다란 골목을 따라 옹기종기 모인 주막집으로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중세 성서의 필체를 연상시키는 메뉴판. 어느새 시끌벅적한 주막집에서 퍼져나오는 웃음소리가 좁다란 돌길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더군요. 출출한 나우네 가족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주막으로 들어섰습니다.

여행 중에 제일 좋은 식사 방법은 마을 사람 따라 하기. 밤베르그 사람들이 마시고 있는 맥주는 라우흐비어(Rauchbier)라는 것으로, 불에 태운 향에 밴 독특한 맥주입니다. 아직 음식 주문하기가 수월치 않아 웨이터 아저씨에게 추천을 부탁했지요. 잠시 후, 으깬 감자에 고기 덩어리를 올리고 고기 몸통 한가운데 칼을 세워 꽂은 음산한 요리가 우리 앞에 놓여졌습니다. 불에 탄 냄새가 나는 맥주에 칼 꽂은 고기라... 으슬거리는 중세 시대로 타임 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묘미가 스릴 만점입니다.

밤베르그의 볼거리 영순위는 단연 대성당 돔(Dom)입니다. 정적 속에서 성당을 찾고 싶어 아침 일찍 서둘렀지요. 좁은 돌길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을 따라가면 광활한 돔 광장이 나옵니다. 이곳은 전쟁 중에 유일하게 손상된 곳이었는데, 중세 시대의 모습 그대로 하나 하나 돌을 깔아 완벽하게 복구했다고 하더군요.

바로 맞은 편에 보이는 것이 1237년에 완성된 돔 성당. 첨탑이 네 개 있는 독특한 양식이지요. 그 안에 들어가면 머리로 성당을 받치고 있는 밤베르그 기사상이 성당 벽면에 단아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서울의 상징이 이순신 장군이라면, 밤베르그의 얼굴은 바로 이 중세 기사상인 셈이죠. 돔 성당을 건립한 하인리히 2세와 왕비의 무덤이 제단아래 있으니 빼먹지 맙시다!

돔 대성당 밖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있는 옛 궁전 마당으로 들어서 보세요. 100% 목조로 완성된 옛 궁전은 독특한 디자인의 창문과 기와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성 미하엘 교회에 다다르게 되죠. 성 미하엘 교회는 천장에 608가지 꽃 그림이 그려지고, 예배당 내부가 온통 흰색으로 장식된 독특한 교회입니다. 이곳을 굳이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부드러운 벽돌색 밤베르그의 시가지 전망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여름철에는 수도원 안쪽에 있는 비어가르텐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기분이 그만이랍니다. 수도원 마당에 맥주집이 있다니, 독일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서 반대편 언덕을 따라 내려가면 레그니츠 강을 따라 서있는 어부의 집이 보입니다. 이곳은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아기자기한 어촌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지요. 여기 저기 빨래가 널려있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 위로 흔들리는 배들의 삐걱거림은 독일이라 생각되지 않는 정취입니다.

집밖으로 빨래를 널지 않고, 집집이 빨래 건조기를 사용하는 독일인들의 결벽증도 이 그림 같은 어부마을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 합니다. 오징어를 통째로 튀겨 케첩을 찍어 먹는 독특한 먹거리도 수산물이 흔치 않은 독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밤베르그 만의 특권이지요.

많은 독일인들이 밤베르그를 찾아옵니다.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서, 전쟁이 단절해 버린 기억의 파편을 찾아서...

2001년 2월 서울. 발등의 불 끄기에 바쁜 생활.

집 앞 눈이나 쓸어야겠습니다.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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