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전기톱' 경영과 노자

입력 2001-01-26 18:35수정 2009-09-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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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가 21세기 미국 대기업 경영자를 가르친다면 다들 놀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미국의 양대 자동차 메이커의 하나인 GM의 잭 스미스 회장실에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이 돌받침 위에 소중히 놓여 있다. 종업원 목을 잘 치기로 악명(?) 높은 스미스, 별명조차 섬뜩한 ‘전기톱’선생이 유유자적하는 2500년전 도인의 가르침에서 배운다니 참으로 역설처럼 들리지 않는가.

다 아는 것처럼 GM은 8∼9년전까지만 해도 쓰러질 수밖에 없는 회사였다. 91년의 경우 45억달러에 달하는 재정 손실을 기록하고, 주식 가치는 땅에 떨어졌으며, 220억달러를 외부에서 빌려다 쓰면서도 돈이 모자라 신차 개발도 포기한 상태였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위기가 아니었다. 바로 70년대까지 GM의 화려한 성공의 그늘에서 자라고 퍼진 독버섯같은 관료주의, 상층부의 개혁 거부가 어느 새 회사를 흐느적거리는 공룡으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일본 소형차 공세에 대한 대응 실패, 90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경제 악화가 파도처럼 덮친 것이었다.

▼속전속결 개혁으로 GM 구해▼

휘청거리는 공룡을 벌떡 일으켜 세운 게 회장에 오른 스미스였다. 그는 ‘스피드 경영’을 내걸고 본사 인원을 1만3500명에서 1500명으로 줄였다. 북미지역에서 3년 동안 잘라낸 인력만 7만4000명에 달했다. 북미 지역의 27개에 이르는 구매본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식으로 관료적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회사를 부도 위기로 몰고 간 내부 의식의 개혁에 나서고 슬림화와 합병을 밀어붙였다.

창사 이래 최고로 지독한 잘라내기와 다잡기는 효험을 발휘했다. 93년에 당장 6억달러의 순이익이 나고 97년에는 230억달러의 순익을 냈다. 이제 다시 미국 시장 점유율 31%, 세계시장 17%를 차지하는 당당한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46만명에 달하는 종업원들이 긍지를 되찾은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좋은 지도자란 아랫사람들이 다스리는 자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 다음은 아래로부터 칭찬 받는 지도자다. 그 다음은 아랫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지도자다. 최악은 아랫사람을 모멸하고 수치심을 안겨 주는 지도자다.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는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다 되어 가면 아랫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 스스로가 해냈다(We did it ourselves)고 말한다.’

스미스 회장의 좌우명이다. 도덕경 17장의 번역상 오류나 이상한 뉘앙스는 그리 문제가 아니다. 아래서 지도자를 믿고 따라야만 개혁도 되고 능률도 오른다는 것을 정확히 짚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벌한 전기톱 경영의 스미스도 2500년전 동양의 지혜에서, 아랫사람들의 자발성과 신뢰를 끌어내는 리더십이 최고라는 이치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한때 GM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었던 것이 일본 자동차들이다. 그런데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이 휘청거리던 공룡 GM의 회생, 미국차의 부활은 바로 쌩쌩 달리던 일본차를 비칠거리게 만들었다. 그러자 이제 일본 메이커들은 ‘서양에서 배우자’ ‘코쟁이에게 맡겨야 살아 남는다’로 돌아서고 있다. 이 또한 역설만 같다.

닛산 자동차는 재작년에 프랑스 르노자동차 출신의 카를로스 곤(46)을 사장으로 영입해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쓰다 자동차도 미국 포드 자동차에서 자란 마크 필즈 사장(39)을 받아들여 경영을 다잡고 있다. 올해 들어 미쓰비스 자동차도 다임러크라이슬러 출신의 독일인 롤프 에크로트부사장(58)을 ‘최고집행경영자’로 모셔다 살아 남기 개혁을 펼치고 있다. 이들 서양인 경영자들은 ‘속전속결’을 외치며, 인정에 얽매이는 일본 경영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있다.

▼남탓만 하며 세월 보낼텐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속전속결의 개혁과 적(敵)과 벽(壁)을 뛰어넘는 발상뿐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이 땅에서는 개혁은 ‘나만 빼고’하라는 아우성이 넘친다. 그럴싸한 이유와 항변으로, 교묘한 수법으로 개혁에 발목을 건다. 기업인은 ‘정치 탓’, 정치인은 ‘기업인 탓’, 노조는 ‘경영인 탓’, 경영측은 ‘노조 탓’, 지역에서는 ‘타관(他關)사람 탓’으로 세월을 보낸다. 서로가 미움에 취해 시뻘건 눈으로 기업과 나라 목이 비틀려 숨이 다해 가는 것도 모른다.

<김충식 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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