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애 이겨낸 불굴의 예술혼

입력 2001-01-25 18:51수정 2009-09-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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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만 대면 무엇이든 그림이 된다’― 어느 영역에도 구애됨이 없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화필로 독창적인 경지를 이뤘던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화백이 23일 타계했다. 지난해 말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시인의 운명(殞命)에 뒤이은 부음(訃音)이니 불과 한 달 사이에 한국 시단과 화단의 두 거목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실로 한 시대를 떠나보내는 송별(送別)이요, 쉬이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없는 아쉬운 석별(惜別)이다.

운보선생은 지난해 12월 북에서 내려온 막내동생 기만(基萬·북한 공훈화가)씨와 병상에서 50년 만의 안타까운 ‘필화(筆話)상봉’을 했다. 이제 동생은 북녘에서 형님의 부음을 듣고 통곡할 터이니 형제의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은 민족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7세 때 장티푸스로 청력(聽力)을 잃은 운보선생의 일생은 귀먹고 말 못하는 장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위대한 ‘인간 승리’였다. 18세 때인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이래 선생은 ‘침묵의 심연’속에서 무려 1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더욱이 선생은 10년을 주기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혁신하는 놀라운 창조성과 활화산 같은 정열을 보였다.

세필(細筆)에서 시작해 한국 산하의 정기를 수묵(水墨)의 농담(濃淡)과 단순한 색상으로 힘차게 그려낸 ‘청록산수’, 조선시대 민화의 정취와 익살을 대담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바보산수’를 거쳐 말년의 ‘걸레그림’에 이르기까지 실로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붓 가는 대로 넘나들었다.

“바보란 덜된 것이며 예술은 끝이 없으니 완성된 예술은 없다. 그래서 바보산수를 그린다”던 운보선생의 말씀은 대가(大家)의 금언(金言)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일제강점기 말의 친일 행적이란 한 가닥 오점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선생의 빛나는 업적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운보선생은 장애인복지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84년에는 충북 청원에 ‘운보의 집’을 세워 농아들에게 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청각장애인의 권익옹호에 앞장서 왔다.

청각장애의 한(恨)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운보선생의 생애는 그 자체가 후세 사람들에게 주는 값진 교훈이다. 또한 선생이 생전에 보인 불굴의 예술혼은 길이 귀감(龜鑑)이 될 것이다. 삼가 운보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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