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월간 경실련 '시애틀의 잠 못 이룬밤'

  • 입력 2001년 1월 19일 14시 35분


거대화한 공룡! 세계 무역기구가 지구의 운명을 집어 삼킬 것인가?

지구 생태계의 은혜와 품안에서 각 나라, 민족의 특성을 가지고 다양하게 살아가는 풀뿌리 민중의 목소리와 권리, 지구생태계의 운명이 보장될 것인가?

NGO와 WTO의 잠 못 이루는 시애틀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6시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15시간의 시차를 넘어 29일 오전 11시경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다.

커다란 대륙의 하나가 쑤욱 시야에 들어와 점점을 이루다가 이윽고 시야에 꽉 차는 순간 그 땅에 발을 대딛는다.

시애틀에 가면 비옷을 준비하라고 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애틀은 우기에 접어 들어 연일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비가 내리는 시애틀 다운타운 거리는 비를 맞으며 WTO에 반대하는 NGO들의 행진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WTO 각료회의는 11월 30일 개막돼 12월 3일 각료회의 선언문 채택으로 폐막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11월 30일 WTO각료회의가 열릴 컨벤션센터를 포위한 NGO의 인간사슬에 의해 개막식은 시작되지 못하고 오후 3시경에야 개회됐다.

세계 각지에서 참여한 NGO들은 아침 일찍부터 시애틀 시내 곳곳에서 시위와 행진을 시작하여 낮12시경에는 수만명의 대열을 이루었다.

바다거북이, 지구생태계, 숲을 WTO로부터 지키자는 환경운동가들의 퍼포먼스 대열, 학생들의 시위와 행진, 제3세계 민중들의 시위와 행진, 시민들의 행진과 축제, 미국 산별노총 소속 노동자 대열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의 투자협정·WTO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 대표들은 제3세계 민중회의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면서 전체 대열에 합류하였다. 전국농민총연맹 대표로 참석한 유상욱 총장이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무시하고 자국의 농업주권을 강탈하려는 WTO의 농업교역 자유화 조치에 대해 규탄발언을 해 연대의 힘을 더욱 고조시켰다.

꽹가리, 북 등 우리 악기는 집회의 흥을 돋는데 큰 몫을 하여 다른 나라 NGO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한편 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출동한 경찰들은 바리케이트를 쳐 저지선을 만들고 페퍼스프레이(최루탄)를 쏘며 우리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또한 인간사슬로 저지선을 뚫으려는 NGO들을 강제로 연행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날 워싱턴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저녁 7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으며 다음날부터 워싱턴 주방위군을 투입하였다.

세계 NGO들은 시애틀시와 워싱턴주 당국의 폭력적인 진압에 항의하고 평화적인 집회 보장을 요구하며 12월 3일까지 평화적인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NGO들은 매일 WTO협상을 반대하는 집회와 더불어 시애틀 각료회의에서 다루려고 하는 협상내용과 쟁점을 모니터하고 우리의 요구를 정리하는 수많은 워크숍과 교류회를 가졌다.

생명공학, 환경과 무역, 유전자조작식품, 지적재산권협정, 서비스협정과 공공서비스, 농업과 무역, 여성과 민주주의 등에 관한 워크숍은 물론 제3세계 NGO들과의 연대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남반부 민중의 목소리'는 WTO에 반대하는 제3세계 나라 NGO들의 모임으로 이 자리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본인이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한국정부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지표로서 국민소득 1만불시대와 OECD 가입을 자랑할 때 우리 국민들은 IMF체제로 들어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IMF체제이후 1년동안 2만여 기업체가 도산하고 지금까지 4백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개인의 삶, 가정파탄으로 급기야 삶을 포기하여 죽어가는 우리 민중들의 모습에 대해 눈물을 머금으며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IMF는 우리 국민들 삶의 빈부격차를 더욱 양극화하여 상층 20%에 부의 80%가 집중되어 있는 부정의를 초래하고 있으며 국가로 하여금 공공서비스, 사회복지를 줄이고 세계적인 산업과 무역을 위해 필요한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으며 WTO는 이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WTO는 자본을 위한 세계무역질서를 만드는 것이고 이미 국경을 넘어 존재하는 초국적 자본은 모든 시민의 사회정의, 환경정의, 경제정의를 부정하고 세계의 공공재인 생태계를 집어 삼키고 세계 민중들의 자립적이고 다양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제3세계 NGO들과 나누며 WTO를 반대하기 위해 세계 NGO들이 모든 차이를 넘어 함께 연대하자고 하였다.

12월 2일은 The Third World Network이 중심이 되어 각료회의에서 다루고 있는 WTO 핵심이슈를 모니터하여 보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WTO각료회의가 난항을 겪고 있으며 협상이 결렬될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었다. 같은 시간(시애틀 오후 5시, 서울 오전 10시)서울에서는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의 각료회의 대표 발언에서 밝힌 WTO 협상에 대한 입장을 비판하는 민중행동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한덕수 본부장은 '다자간 무역자유화의 촉진이 미래 번영의 최선의 길' '무역 자유화를 위해 다양한 이슈를 다룰 뉴라운드협상이 일괄타결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농산물은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해외직접투자 확대, 경쟁환경 조성등의 새 이슈를 협상에 포함시키자'고 발언하여 WTO에 반대하는 한국 NGO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한덕수 본부장을 국내로 소환하자는 요구까지 거세게 일어났다.

12월 3일 WTO 뉴라운드 협상이 결렬될 것이라는 확신과 기쁨에 찬 NGO의 마지막 집회이후 WTO 제3차 각료회의는 협상결렬로 막을 내렸다.

세계 NGO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우리는 시애틀에서 경찰의 폭력을 이기고 자욱한 최루탄 가스를 넘어 환경정의, 인권실현, 민주주의 보장, 여성의 권리, 농업주권이라는 세계 시민들의 목소리를 세계화시키고 이 모든 정당한 요구를 집어 삼키려는 WTO의 의도를 결렬시키는 승리를 이룬 것이다.

이는 분명 WTO에 반대하는 세계 NGO들의 연대의 힘이 이룬 성과였다.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를 행동으로 보여준 NGO의 위대한 승리였다.

김제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이 글은 월간 경실련 2000년 1월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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