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기자의백스테이지]연예인 부정입학 누구의 잘못인가

  • 입력 2001년 1월 5일 10시 39분


한국외국어대학은 3일 2001학년도 수시모집에서 특기자 전형으로 각각 일본어과와 영어과에 합격한 인기 그룹 'SES'의 ‘슈’(본명 유수영,사진 오른쪽 끝)와 댄스그룹 '신화'의 이선호 등 연예인 2명에 대해 관계법령에 의거, 합격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중학교 1학년과 3학년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가수활동을 벌였던 이들은 재외국민 특별전형 비리와 관련해 문제가 됐던 켄트 외국인학교를 졸업했다. 고졸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이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슈와 이선호는 하루 아침에 '부정 합격자'가 돼버린 것이다.

켄트 외국인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 고려대 서양어문학부에 재학중인 'SES'의 유진(본명 김유진)의 경우 3일 고려대 측이 입시관리위원회 임시회의를 소집해 거취를 논의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 "이미 학교에 재학중인 상황에서 법률적인 검토를 더 해야 한다"는 게 고려대 관계자의 얘기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 가요 관계자들과 네티즌들은 "정부와 교육부가 문제가 터지자 책임을 연예인에게만 돌리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견 매니저 A씨는 "고졸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학교를 정부가 방치하는 등 대학 입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라며 "그렇다면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현재 재학중인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어린 연예인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합격 취소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면 더 큰 비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홈 페이지에는 '연예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마치 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듯한 오해를 일으켰다'거나 '재입학 행정소송을 벌여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켄트 외국인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거나 올해 합격한 연예인들은 모두 불법으로 학적을 취득한 죄인 취급을 받는 꼴이 됐다.

일부 연예인들이 이 지경에 빠진 것은 사실 우리네 교육계의 잘못도 크다. 2~3년 전부터 시행돼온 해외교포 출신 연예인들의 특례입학에 대해 별다른 지침을 내리지 않던 교육부나 입시제도의 빈틈을 이용한 대학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갑자기 부정입학 사건이 불거지자 일부 연예인을 거론하며 사건 해결에 급급하고 대학은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예인을 마구잡이로 끌여들였다. 특히 대학들은 이름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인 학교 출신은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연예인을 활동 경력을 인정해 입학을 허가했다.

지난 97년 대학의 연예인 모셔오기 풍조를 취재한 기자는 신세대 가수 B의 매니저의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B의 수능 성적이 200점 만점에 50점도 못 받아서 '대학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제 연예인은 성적이 아니라 지명도로 학교에 들어가는 것 같더군요."

부정입학 사건으로 자의건 타의건 피해를 입은 일부 연예인들은 '합격 무효' 소식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년 이상 대학을 다닌 연예인들 역시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할 지 모른다.

그러나 부정입학의 진위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사후약방문'만 하는 우리네 교육 현실을 다시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교육부와 대학은 특례입학에 대한 투명한 선정기준을 세우고 연예인의 무조건적인 특혜를 재고해야 한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