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토종한우서 골다공증 예방제 만든다" 한우농장 르포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48분


지하 10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마시며 천수를 누리는 소들이 있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의 한 목장에 살고 있는 한우 120마리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들일 것이다. 인공수정으로 대부분의 소들이 평생 짝짓기 한 번 못해 보는 것과는 달리 이 소들은 때가 되면 마음껏 성생활을 즐긴다. 어쩌다 병들어 죽더라도 흙 속에 고이 묻힌다.

이런 특별 대우를 받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녀석들은 우리나라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토종 한우들이기 때문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것도 한우의 수명을 보기 위함이다. 지천에 깔린 것이 한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토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식탁에 오르는 한우도 외국의 비육우와 교잡한 개량 한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소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건국대 한상기 교수(낙농학과)의 20여 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기 때문. 70년대 일본 유학 시절 종자 보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한 교수는 귀국하자마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토종 한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 교수는 “당시 이미 종자개량이란 명목으로 토종 가축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며 “다행히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곳에는 자연선택의 냉엄함이 존재한다. 암소는 영하 20도의 한겨울에 출산하더라도 혼자 힘으로 탯줄을 끊고 젖을 먹여 새끼를 키워야 한다. 설사에 걸려도 항생제 한 알 얻어먹지 못한다. 스스로 목장을 뒤져 약풀을 뜯어먹고 고쳐야 한다. 심지어 다리가 부러져도 간단한 부목만 대줄 뿐이다. 한 교수는 “지금까지 몇 마리가 병에 걸려 죽었다”며 “안타깝지만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녀석들만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한우는 수천 년 전 서아시아에서 유목민에 의해 가축화된 야생소의 후손이다. 그 때 유럽으로 간 소들은 젖소와 고기소로 개량됐다. 반면에 한반도에 들어온 소들은 오랫동안 농사일을 하면서 한우의 고유한 특징을 갖게 됐다. 한 교수는 “한우는 몸집이 아담하고 엉덩이가 작아 몸놀림이 민첩하다. 또 털빛이 일정하고 성질이 온순한 반면 끈기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한 교수가 단지 토종을 보존하기 위해 이 소들을 모으고 키운 것은 아니다. 그의 연구실 이름이 ‘분자 유전학 실험실’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 교수는 한우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다른 품종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유전자를 찾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놀라운 유전자를 발견했다. CPP―H 유전자가 그것이다.

소는 칼슘 이온의 체내 흡수를 돕는 카제인 인펩타이드(CPP)라는 물질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한우의 경우 이 유전자의 염기 중 하나가 바뀌어 CPP―H라는 물질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칼슘 흡수력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팀은 이 유전자를 갖는 한우와 젖소를 교배시켰고 10월 마침내 이 유전자를 갖는 젖소가 태어났다. 이 녀석이 자라 소젖을 만들어 내면 거기서 CPP―H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이 물질은 차세대 칼슘 흡수 촉진제로 골다공증 예방제 등 각종 기능성 식품에 널리 쓰일 전망이다. 이미 미국 호주 등지에 물질특허 등록이 끝난 상태이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머크사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참에 한 교수는 ‘우리바이오젠’이라는 회사도 차렸다. 사장님이 된 것이다. 내후년쯤에는 본격적인 제품이 나올 거란다. 현재 한 교수는 역시 한우에만 있는 또 다른 유전자 몇 가지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한 교수는 “각 나라가 좀 더 많은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찾아보기 어려운 고유 종들을 오히려 외국에서 만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돼지와 닭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이미 토종을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강석기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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