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뜨겁다]예산 지역민원 챙기기 백태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8시 54분


100조2246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26일 확정됐다. 여야는 ‘국민 부담 경감 차원에서 사상 최대 규모로 삭감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나라 살림보다 지역 민원 해결에 급급했던 국회 예산 심의의 속사정을 소개한다.

▽눈속임 선심 예산〓예산 심의에서는 워낙 큰 단위의 사업이 논의되기 때문에 수천만원이나 수억원 정도의 사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의원들 사이에는 이런 소소한 규모의 예산을 따내는 경쟁이 상당히 치열하다.

경기 용인의 정신요양원 증축비(1억2000만원), 경남 사천의 노인요양원 건축비(4억원), 부산 맹인점자도서관 지원비(2000만원), 충주 체육공원 조성비(5억원) 등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예산을 추가 확보한 사례들. 충북과 강원의 지방경찰청 개축비(5억원)와 서울 동작구 보육원 시설비(4억원) 등도 집요한 물밑 교섭을 통해 예산을 증액한 경우다.

이 틈에 국회사무처도 예산결산심사 업무지원비(3억원), 국회 해외종합정보망 확충비(1억5000만원), 국회의원 보좌직원 단기 연수비(1억3000만원) 등 일부 사업 예산을 슬그머니 챙겼다. 또 한일의원 바둑대회 비용(3000만원)도 의원교류협력 지원비라는 명목으로 책정됐다.

2001년 예산 삭감·증액내용

증감 항목금 액
국채발행 및 이자비용△5,640
재해대책 등 예비비△9,463
금융구조조정 채권이자비용△3,535
보상금 및 출연 출자금△3,500
농어가부채 경감 등 농어촌지원 7,303
도시영세민 주거환경 개선 2,000
사회간접자본투자 7,101
기업 금융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대책 500
사회복지예산 1,008
지방중소기업지원 등 기타 593
총예산 규모100조2,246

▽지역 사업은 영남 충청 호남 순(順)〓9101억원이 증액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중에는 영남지역 예산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속도로 건설비(1020억원)의 경우 대구∼포항, 부산∼울산 등 영남 구간 건설비가 420억원으로 전체의 41.2%를 차지했다. 반면 충청 구간은 300억원(29.4%), 호남 구간은 200억원(19.6%)이었다.

철도 지하철 예산(1137억원)도 경부고속철 관련 비용 등 영남지역 사업 예산이 585억원(51.6%), 항만 예산(535억원)도 부산 광안대로 건설비 등 영남지역 사업 예산이 380억원(71.0%)으로 가장 많았다.

이렇게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영남 편중 증액이 이뤄진 것은 호남지역 사업 예산은 이미 정부의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여당인 민주당의 요구로 상당 부분 반영됐기 때문. 따라서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영남지역 사업 예산 확보는 ‘당정협의에서 소외된데 따른 정당한 보상’이라는 게 영남권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

▽힘있는 의원이 우선(?)〓예산 확보 줄다리기 과정에선 예결위원이나 각당 지도부 등 영향력 있는 의원들의 민원 사업 예산이 우선적으로 확보되는 게 보통이다.

교육 분야의 경우 계수조정소위에서 막판에 12개 사업 예산이 증액 대상으로 올랐으나 이 중 예산 확보에 성공한 사업은 9개 사업에 그쳤다. 민주당 중진인 김덕규(金德圭)의원이 요구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장학사업비(5억원)와 고전국역사업비(1억원), 예결위원인 한나라당 이재창(李在昌)의원이 요청한 방송통신대 경기지역 학습관사업비(10억원) 등이 그 사례.

또 한나라당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과 이강두(李康斗)당 예결위원장이 공동으로 요구한 대전산업대 강당 신축 설계비(1억5000만원)와 민주당의 예결위 간사인 정세균(丁世均)의원이 요청한 전북대 시설 보수비(5억원)도 무난히 예산 확보에 성공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이 요구한 국제교육대학원 시설비와 경북 성주 통합고교 지원비 등은 증액 대상에서 누락됐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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