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엄마의 와우! 유럽체험]독일의 크리스마스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1시 20분


이른 아침부터 트럭이 하나 둘 교회 광장으로 모여들고, 인부들이 부지런히 나무 판자들을 나르기 시작하더니, 오후가 되자 수십개의 통나무 부스가 완성되었습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장터(Weihnachtsmarkt). 모양과 색상을 하나로 통일해서 오밀조밀하면서도 깔끔한 멋을 풍기는 상점들은 11월말부터 4주 동안 크리스마스의 온기를 선사하게 됩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양초, 공예품, 의류와 장신구, 다양한 선물거리들이 다양하네요. 어린이들을 위한 회전목마, 인형극, 캐롤 합창단, 산타클로스 음악대까지...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며 따스하게 데운 적포도주인 그뤼바인을 마시고, 아이들은 서로 맘에 드는 회전목마를 골라 타느라 분주합니다.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 속의 경쾌한 캐롤은 외지에서 연말을 보내는 이방인들에게도 따뜻한 선물이지요. 지나가다 문득 허기를 느낀 넥타이 부대들도 멈춰 서서 소시지와 맥주를 즐기고 있네요. 교회에서 막 결혼을 마치고 나온 새색시, 새신랑이 장터에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샴페인을 돌리는 풍경도 순박한 독일 풍경입니다.

장터가 그렇듯이 먹을 거리도 다양합니다. 버섯을 냄비에 볶아서 소스를 끼얹어 먹는 샹피뇽, 전 독일인의 국민스낵인 소시지, 독특한 생강 맛을 내는 초컬릿빵 레브구헨, 나우엄마의 향수를 자극하는 잡채를 볶고 있는 중국음식점까지... 크리스마스 장터는 저녁 무렵 인산인해를 이루다가 오후 8시쯤이면 차양을 내리고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말끔한 광장으로 둔갑합니다.

도시마다 고유한 크리스마스장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뉘렌베르그(Nurnberg) 장터. 성모성당이 있는 도시 심장부 광장에 오밀조밀한 수백 개의 상점들이 밤새 불을 밝힌 모습이 장관이거든요.

이곳은 어른을 위한 장터와 아이를 위한 장터가 별도로 있어서, 축제를 찾아온 꼬마손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듬뿍 선사합니다. 아이들이 직접 크리스마스 케이크인 레브쿠헨을 요리사 아저씨와 만드는 코너에는 유독 어린 손님들이 가득하네요.

크리스마스 장터는 독일 전역에 있지만, 이곳 뉘렌베르그의 명물이 있다면 짜리몽땅한 뉘렌베르그 소시지입니다. 불 판에 구워서 빵에 세 개씩 끼워 주는데, 여기에 겨자나 케첩을 뿌려 먹는 맛이 그만이에요. 식사 대용으로 먹을 때는, 시큼하게 절인 양배추 볶음인 자워크라프트와 소시지를 곁들여 먹으면 됩니다. 자워크라프트는 냄새가 김치볶음과 똑같아서,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김치대용식으로 인기 만점이죠.

독일인들은 대부분 엉거주춤 선 채로 식사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목 양쪽에 음식을 우물거리는 사람들까지! 유모차를 가져간 나우네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서 뉘렌베르그 장터에 가면 인파에 떼밀려 정작 흙 밟을 일이 없다더니... 그때, 뒤에서 쩔쩔매는 동양인 부부를 돌아본 등치 좋은 독일 아저씨가 우렁찬 음성으로 "내 뒤에 유모차가 있소. 길을 비키시오!"라고 외치자, 홍해바다가 열리듯이 시원스레 길이 뚫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에 유모차 밀고 뉘렌베르그 장터 가실 분은 이 방법 이용해 보시길.

독일의 장터는 크리스마스 전, 일요일을 기준으로 꼭 4주간 오픈합니다. 일요일이 기준이다 보니, 어떤 해는 정작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기도 전에 철수를 해버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독일의 친지를 방문할 때도, 미리 확인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는 독일인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가장 독일 적인 정취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오는 시기이니 만큼, 숙소를 미리 확보하시는 것도 중요하구요.

온 거리가 떠들썩한 한국의 크리스마스와 달리, 독일은 철저히 가족 중심의 크리스마스를 보냅니다. 맛난 케익을 굽고,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가 모여 음식을 나누고, 함께 마을 교회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하는 정도지요.

나우네도 하노버합창단의 콘서트에 갔습니다만, 나우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10분도 못 듣고 철수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입구에서 CD 한 장만 달랑 사가지고 돌아왔었지요.

지금 그 CD를 들으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는 나무만 사다가 나우와 직접 트리를 꾸몄어요. 나우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많이 받고 싶어, 제 양말 대신 아빠 양말을 걸었습니다. 산타클로스가 바로 앞에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걸 모르고... 누군가를 마냥 믿고 기다리는 순수의 시대.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아이 다섯에게 골고루 그 황금의 시절을 온전히 누리게 해주셨던 어머니. 올해도 연말을 보내며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나우엄마 (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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