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유창혁-이세돌, 올 MVP "나야 나"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9시 25분


“기성전 도전자 결정전은 양보할테니 배달왕전은 넘겨주시면 좋겠는데요.”

이세돌 3단은 최근 박카스배 천원전을 우승하고 난 뒤 앞으로 벌어질 유창혁 9단과의 대결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의 솔직한 어법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었다. 또 배달왕전 만큼은 반드시 따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유 9단은 어떤가? 유 9단은 최근 삼성화재배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이 3단에 대해 “아직 이창호 9단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어려 바둑이 부쩍부쩍 늘고 있는 만큼 저도 정진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당히 조심스런 수사(修辭)를 쓰긴 했지만 그 행간에는 ‘이 3단이 물론 잘 둔다. 그러나 아직 나를 이길 사람은 이창호 밖에 없다’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유창혁 9단과 이세돌 3단. 이들이 올 연말 바둑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유 9단과 이 3단은 최근 ⓝ016배 배달왕기전 결승5번기와 현대자동차배 기성전 도전자 결정 3번기 등 주요한 길목에서 연거푸 마주쳤다.

일단 유 9단이 18일 열린 기성전 도전자 결정3번기 제2국에서 이 3단을 177수만에 불계로 물리치며 2대0으로 도전권을 따내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이 3단의 말처럼 배달왕전의 향배에 쏠려 있다. 유 9단이 한 발 앞서가면 이 3단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등 번갈아 한 판씩 주고 받아 현재 2 대 2 동률. 바둑계에서는 배달왕전 결승전 최종국을 이기는 사람이 올해 바둑 MVP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외 대회 본선은 물론 예선에서도 패배를 거듭했던 유 9단은 10월 이후 컨디션을 회복, 최근 국제기전인 삼성화재배를 우승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유 9단의 입장에선 유일하게 갖고 있는 국내 타이틀인 배달왕전을 방어해 국내, 국제 기전을 하나씩 갖고 싶어할 것이다.

최근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유재형 4단을 3대0으로 물리치고 타이틀을 따낸 이 3단으로서도 배달왕전을 우승해 2관왕으로 올해를 마감하고 싶을 것이다. 다승(70승) 연승(32승) 등 올 바둑계 기록을 휩쓴 이 3단은 배달왕전에서 우승하면 이창호 9단에 이어 국내 바둑계의 실질적 2인자가 된다.

올들어 쌍방 전적은 이 3단이 5승 4패로 앞서 있다. 그러나 큰 바둑에 강한 유 9단, 항상 자신만만한 이 3단. 서로 ‘내가 질 리가 없다’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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