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르포,"여의도 객장에도 봄은 오는가"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5시 53분


새 희망을 품고 맞이한 2000년. 그리고 12월20일. 여의도 하늘은 온통 잿빛이다.

활기가 넘쳐야할 오후 한낮임에도 대한민국 금융시장의 심장부인 여의도는 을씨년스럽기만하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얼굴에는 핏기마저 말라버렸다. 객장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텅비어 있고 그나마 얼마안되는 투자자들의 어깨는 피곤에 지친 듯 축 처져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녁은 다음해의 수확을 기약하건만 텅빈 객장은 무엇을 약속하는가.

연초 1000포인트를 넘나들던 종합주가지수는 거의 반토막이 난 상태다.

한때 300포인트를 향해 힘차게 비상하던 코스닥지수는 연일 '역사적인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며 1/5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잃어버린 여의도 객장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 여의도는 우울하기만 하다.

몇몇 증권사의 경우 올 하반기 들어 감원, 감봉 등을 실시했거나 현재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증권사의 한 직원은 "지난주 모 투신사가 200명의 인원을 감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우리 회사의 경우 감원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월급은 10월을 기해 50%이상 삭감된 상태"라며 연신 깊은 한숨만 내쉰다.

그나마 내년에는 월급봉투가 더 얇아질 처지다. 증권사들은 전분기 실적을 기준으로 6개월마다 급여계약을 경신하는데 올 하반기에 주가폭락에다 거래부진으로 수익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그렇다고 지금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다. 1만5000원에 받은 자사주가 지금은 2500원대. 나가봤자 퇴직금을 건지기는 커녕 오히려 토해내야할 판이다.

C증권사의 한 직원은 "증권맨들의 처지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도덕적 해이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고 씁쓸해 한다.

모 증권사의 주식형 펀드가 50%에 가까운 손실률을 기록하자 사이버 공간에 이 회사에 반대하는 소위 '안티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객장에 나타난 투자자들의 표정은 더욱 어둡다.

점심시간. 객장에서 나와 담배를 피고 있는 김준수씨(47·무직·영등포구 대림동)는 "코스닥 종목에 물타기를 하다가 이제 20분 1토막이 났다"며 연신 담배연기만 잿빛하늘에 뿜어내고 있다.

그 옆에있던 다른 투자자는 "이제 거래소고 코스닥이고 다 틀렸고 남은 몇푼으로 옵션투자나 해봐야 겠다"며 "이제 진짜 돈놓고 돈먹기로 가야겠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주가가 크게 뛸 때 흥청거리는 모습이 자주 TV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이 지역 음식점들과 유흥가도 이제는 증시 침체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점심식사를 회사밖에서 여유있게 즐기던 증권맨들은 요즘들어 사내식당을 이용한다. 호황일 때는 자리가 남아돌던 각 증권사의 구내식당은 지금은 '자리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붐비기 일쑤다. 증권맨들의 지갑이 홀쭉해진 탓이다.

썰렁하기는 유흥가가 더하다.

증시 침체로 유흥가에 손님이 급감하자 업소들은 그래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점심시간에 미끈한 여성들을 동원, 거리에서 깜짝쇼를 열거나 무료 커피공세도 펼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다

대신증권 건너편의 한 단란주점 관계자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면 "매출액이 하반기들어선 상반기에 비해 50% 이상 떨어졌다"고 울상이다.

횟집 등 고급 식당들도 테이블이 텅 비어있기 일쑤다.

순대국집이나 북어집 등 3000∼4000원 안팎이면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한 식당들이 그나마 꾸준히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

여의도를 뒤덮고 있는 우울한 그림자는 언제나 걷힐까.

모 증권사의 한 직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 봄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의도 증권가는 지금 '봄'이 다시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싸늘한' 겨울을 이겨내려 몸부림치지만 겨울은 이제야 시작됐다.

오준석<동아닷컴 기자>dr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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