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사시출신 백수?

  • 입력 2000년 11월 28일 18시 38분


우리의 경우 법조인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사법시험 합격은 신분상승의 지름길로 통한다. 인문계 수능시험 고득점자는 으레 법대로 몰리고, 사시준비를 빼놓은 정상적인 법학교육은 생각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구조조정 등으로 취업이 어려워지자 자연계 졸업자들도 뒤늦게 사시준비에 매달릴 정도로 ‘고시(考試)열풍’은 거세기만 하다. 사법시험만으로 법조인력을 충원하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법시험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평생 보장’이라는 점일 것이다.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다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변호사로 변신할 수도 있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합격하면 평생 사회적 예우와 고수입을 보장받는다. 그래서 변호사에겐 특별히 직업적 윤리가 강조되고 있다. 변호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규정한 변호사법도 모자라 ‘변호사 윤리강령’ ‘변호사 윤리규칙’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호사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이른바 인권변호사들이 시대적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썼고 역사적으로 이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편에선 고액 수임료와 저질의 서비스, 심지어 범죄 가담 등으로 신뢰를 무너뜨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에는 ‘굶주린 사자보다 배고픈 변호사가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수임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배고픈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사시합격은 평생보장이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다고 한다. 내년에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는 30기 연수생 678명 가운데 판 검사 임용이나 로펌취업, 군입대자 등을 제외한 100명 정도가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보도다. 엊그제 사법연수원측이 취업설명회를 열었을 정도다. 물론 변호사 개업을 할 수는 있지만 사건 유치가 힘들어 섣불리 사무실을 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수 두뇌가 모두 사시로 몰리게 돼있는 현행 법조인력 충원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