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폭력 불감증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24분


사회부 데스크는 우리 사회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는 전망대 비슷한 곳이다. 우선 사건팀 법조팀 지방팀 등 30명에 가까운 전국의 기자들이 보내오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있다. 독자들의 제보와 의견, 항의전화 등도 빗발친다. 팩스를 통해 수많은 단체나 개인들의 성명서 진정서 홍보자료 등이 쏟아져 들어온다.

또 동아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독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뜬다. 틈틈이 데스크 스스로가 사이버공간을 돌아다니며 세상사를 관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여러 갈래의 채널을 통해 사회부 데스크에는 매일매일 많은 자료가 쌓인다.

물론 이것들이 모두 신문 지면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데스크는 이런 자료들을 통해 세상의 큰 흐름들, 사회상을 읽고 정제된 뉴스를 만들 때 참고한다.

사회부 데스크에서 바라본 요즘 우리 사회는 폭력성향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주먹질이나 발길질,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지는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은 아니다. 또한 흔한 ‘언어 폭력’만이 문제는 아니다.

일곱살짜리 딸을 집안에 가두고 때리는가 하면 뜨거운 샤워 물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못본 체하거나, 대소변을 못 가리고 거짓말을 잘한다며 상습적으로 4, 5세 아들딸을 마구 때려 징역 1∼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두집 부모의 자녀학대 사례. 자식을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보는 ‘친권(親權) 폭력’의 한 단면이다.

근로자들의 집회시위도 좋지만 대낮 서울 도심에서 확성기를 통해 몇시간씩 노래와 구호를 마구 뿜어대는 ‘소음 폭력’. 인근 건물 근무자들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점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인터넷 홈페이지의 각종 토론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공론장(公論場)’이라 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이성(理性)과 합리는 없고 독선과 감정만이 판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온건한 의견을 내놓았다가는 다른 네티즌들에게 ‘몰매’를 당하기 일쑤다. 의견이 있어도 웬만한 배짱으로는 구경꾼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이버 폭력’의 장(場)이다. 행정관청이나 공공기관 등에 전화를 했다가 수틀리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하는 신종 협박수단까지 생겨났다.

정치의 장은 또 어떤가. 한나라당의 검찰수뇌부 탄핵안 가결을 막기 위해 아예 표결조차원천 봉쇄한 민주당의 ‘정치 폭력’. 우리 의회사상 여당이 여당 소속 국회의장의 사회를 막은 ‘코미디’가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도 “내년 2월까지 정쟁을 중단하자”고 야당에 제의하는 저 뻔뻔함의 극치.

정부의 대북(對北)정책 기조와 안맞는다고 해서 황장엽(黃長燁)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입을 막아온 국가정보원의 행동. 언론 자유의 침해임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로 불리던 시절부터 숱하게 동원돼온 ‘정보 폭력’의 잔재다.

더욱 위험스러운 것은 우리 주변이 이렇게 온통 폭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감증이 아닐까.

육정수<사회부장>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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