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실업자 21명 '자활의 꿈' 키우는 계양산 '두레농장'

  • 입력 2000년 11월 23일 01시 03분


인천 계양구 계양산 비탈 6000여평의 임야에 콘크리트 가건물 2동과 오리 축사 2채가 나란히 서있는 ‘두레농장’. 실업자들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든 ‘자활공동체’ 생산현장이다. 음식물찌꺼기 냄새가 진동하지만 실업자 21명이 자활의 꿈을 키워가는 소중한 일터다.

매일 오전 7시부터 트럭 4대에 나눠 탄 수거조 7명이 부평, 계양, 연수구 등 인천 전역의 아파트 단지들을 돌며 음식물쓰레기 15∼20t을 수거해 농장으로 실어 나르는 것으로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오리 사육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 아이들한데 떳떳한 아빠가 되겠습니다.” 13년째 목공으로 근무하다 98년 실업자 대열에 선 이현우씨(43)는 “이 일이 힘들긴 하지만 보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거친일 을 알게된 두 자녀는 처음 “아빠 일이 마음에 안든다”고 불만스러워 했지만 몇 차례 농장을 와보고는 이제 아빠를 격려하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돈벌이가 충분치 않아 몇 달 전부터 그의 아내는 부업을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이 곳으로 실려 온 음식물쓰레기는 다른 10명에 의해 분류된 다음 대형 사료기 2대를 거쳐 사료로 만들어진다.

김신한씨(41·여)는 “음식물쓰레기 속에 유리병, 이쑤시게, 수저는 물론 칼까지 나올 때가 있다”며 “제발 음식물 쓰레기에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하고 탈수해 배출해 줬으면 좋겠다”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료는 그들이 키우고 있는 7000마리의 청둥오리에게 먹이로 제공된다.

이 농장 최고령자인 손건식씨(67)는 차량사고로 왼발 일부가 절단된 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 ‘실업극복 인천본부’의 소개로 이 곳에 합류했다. 손씨는 젊은 시절 오리농장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 곳에서 전문가로 통한다.

99년 5월 문을 연 이 농장은 당시에는 54명이나 북적거렸으나 지금은 21명이 일하고 있다. 처음 음식물쓰레기로 오리를 키워 팔면 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많은 실업자들이 모여들었으나 음식물 사료만을 먹은 오리의 육질이 떨어지면서 판로 마련이 쉽지 않았다.

또 자본금 투자가 요구되는 음식물쓰레기 사료화 기계의 용량부족과 함게 침출수 처리문제도 제기됐다.

결국 1인당 월 60만원씩 지급되던 급료는 6개월 후 30만원씩으로 줄어드는 고비를 맞았다. 그래서 두레농장은 뼈아픈 구조조정을 치뤘다. 실업자들이 또 다시 퇴출당한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여기서 실패하면 우리 인생은 끝’이라는 각오로 땀을 쏟았다.

사육 품종을 청둥오리로 바꾸고 외부 단체의 도움으로 사료화 기계도 설치해 지금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농장 총무 이수민씨(36)는 “청둥오리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려 매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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