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도성/‘IMF 3년’ 리더십이 없다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8시 34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지 21일로 꼭 3년이 됐다. 그런데 3년이 지나 IMF를 졸업했는데도 경제가 힘든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부 늑장대응 그때 그대로▼

97년에 한보철강과 기아자동차의 부도사태 처리 지연이 우리 발목을 잡았다면 2000년 11월에는 현대건설과 대우자동차 문제의 해결지연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이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 때문에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흡사하다.

정치권에서의 정쟁과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실종은 3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최근에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표명으로 무언가 되는 듯싶더니 현대와 대우 처리에 관한 정부의 무원칙하고 근시안적인 대응이 실낱같던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의 희망마저 짓밟아 놓았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인 면에서도 극심한 혼미양상을 보이고 있어 혹시 제2의 위기가 도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3년 전 위기의 근본원인은 신뢰의 붕괴였고 3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은 더 악화된 느낌이다. 재무제표를 비롯한 기업정보가 정직하게 작성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투자자들의 불평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기업은 경쟁력을 길러 주주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고 아직도 불투명한 족벌 경영체제를 답습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아직 관치금융의 그늘에서 책임 있는 결정을 못하고 있으며 부실기업에 의해 생존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집행으로 인해 손해를 본 투자자와 시장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뢰는 정직에서 출발하고 투명성 위에서 꽃을 피우며, 책임지는 사회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97년 위기는 위기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처가 부족했기에 그 피해가 커졌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오늘도 신속한 위기대처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논리에 입각해서 사태의 해결을 대충대충 봉합하고 차일피일 미룸으로써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대우자동차와 현대건설에 대한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해당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심해짐은 물론 견실한 다른 기업들마저 자금부족과 신용경색으로 망해가고 있으며 또 다른 부실채권이 양산되고 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대원칙을 세우지는 않고 개별 기업의 향방에 관해 미시적인 간섭을 하는 한 관치경제의 악습은 없어질 수가 없다. 이제는 근본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술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부실 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은 문을 적시에 닫아버려야 한다.

97년 위기는 정치와 정부의 리더십 부재가 빚어낸 국가적 불행이었는데 지금도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정치는 아직도 정쟁을 일삼고 있고 정부는 그 와중에 발목잡혀 소신껏 일처리를 못하고 있다. 노조 등 이해관계집단들의 개혁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반발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능력이고 리더십이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정부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이러다 보니 웬만한 이해 관계자 집단은 대통령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챙겨야만 일이 해결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법과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직 구성원 모두가 시스템의 원칙을 존중해야 하며, 특히 중요한 것은 사회지도층이 먼저 정직하게 솔선수범하며 원칙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구조조정-정치개혁 서둘러야▼

지금 소외된 많은 서민들은 답답하고 괴롭다. 또다시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2의 위기는 막아야 한다. 오늘도 일터를 찾지 못해 소주병을 들고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방황하는 가장들이 있다. 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결식아동들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무직자로 전락하는 이땅의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제2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은 물론 정치와 정부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치권과 정부는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하고 이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온힘을 다해야 한다.

최도성(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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