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추상욱/교육기회 만큼은 공정해야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8시 34분


야학교사로 시작한 나의 교직생활은 올해로 36년째로 접어들었다. 그 동안 우리네 살림살이는 몰라보게 달라졌고 교육환경도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 현실은 문제가 많다. 왜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교육철학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따뜻한 인간애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연마가 교육의 목적이라면 과연 오늘의 교육 현실은 이를 잘 구현하고 있는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교육철학 측면에서 지금의 교육은 50, 60년대의 보릿고개 시절보다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실지붕에서 비가 새고 수돗물은커녕 운동장 한쪽에서 두레박과 펌프로 물을 긷던 시절에도 나름의 교육철학이 살아 있었다.

비록 봉급이 형편없었고 한겨울 교실의 난로를 땔 조개탄조차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정은 끈끈했다. 또 하루 세끼 꼬박꼬박 쌀밥을 먹는 양조장집 자식이든, 점심때 학교에서 옥수수죽 급식을 받아먹는 소작농 자식이든 교육적 차별은 없었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런 정신이었고 사회분위기도 그랬다. 그렇기에 역경을 헤치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공부를 잘 할 수 있었고 재능도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초등학교도 아닌 유치원에서조차 공정한 경쟁을 위한 교육기회가 박탈되고 있다. 공교육의 부실이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녀 과외비나 학원수강료를 대기 위해 과장급 공무원의 부인마저 파출부 일을 나간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교육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지만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의 지나친 확장을 부르고, 사교육의 확장은 공교육의 부실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가장 큰 비극은 돈이 없어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정말 안된다. 적어도 교육분야만큼은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나도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심어줄 수 있고 국가공동체도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추상욱(서울 청암고등기술학교 명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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