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의구/건축사 자격 전문성 인정해야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36분


정부는 1999년을 ‘건축문화의 해’로 선포하고 각종 행사를 성대히 펼치는 등 건축문화의 활성화와 저변확대에 앞장서왔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정부가 정작 건축문화의 주체인 건축사와 그 업무에 대해서는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노동부와 교육부가 ‘자격의 관리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 건축사 자격의 전문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건축문화에 대한 척박한 인식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동부와 교육부는 국가기술자격법과 자격기본법을 폐지하고 모든 국가자격을 새 법에 따라 관리 운영해 ‘직업능력 표준화’를 촉진하고 자격의 관리 및 운영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변호사 의사 법무사 등 60여개 국가자격에 대해서는 특수성이 인정된다며 이 법을 적용하지 않고 소관부처가 현행대로 개별법에 따라 관장하도록 하면서, 건축사를 비롯한 117개 국가자격은 이 법에 통합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주무장관이 관리 운영토록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건축사업무는 다른 자격과의 통용성이나 호환성을 인정하지 않는 특수업무분야로 보아, 개인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바탕으로 건축분야에 대한 고도의 전문지식을 복합적으로 갖춘 건축작가이자 건축문화의 주체로 대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건축사는 사회와 문화를 배경으로 생활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예술가로서 의사 변호사 등과 마찬가지로 전문자격사로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는 건축사의 주업무인 건축설계분야를 시장개방에 대비해 국가간 자격을 상호 인증토록 해 ‘건축실무에 관한 전문성의 국제기준 권고에 관한 협정’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도 일부대학을 중심으로 5년제 건축학 과정을 도입하는 등 건축학을 건축공학에서 분리해 건축계획과 디자인 위주의 건축교육으로 전환할 것을 서두르고 있다. 건축사 자격면허를 관장하는 건설교통부도 건축사자격을 건축계획 및 디자인 위주의 인증방식으로 전환하고 건축사등록위원회가 통합관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국제기준에 맞는 건축사 자격제도를 갖춰 건축사의 국제인증을 받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간 건축사자격 상호인정에 대한 본격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사를 학력제한이 없는 기술계 및 기능계에 통합관리할 경우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게 된다. WTO 회원국들은 건축설계분야의 전문성을 인식해 국가별로 별도의 법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건축사는 전문지식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문화예술적 도시적 시각에서 건축물을 계획하고 그 형성과정을 총괄지휘하는 전문가다. 따라서 일반적인 기술 기능계와는 다를 수밖에 없고 ‘표준화된 인정방법 및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교육부와 노동부가 건축교육 및 건축사제도개선 내용과 방향을 파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의구(대한건축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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