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도로시 "좀 모자라 보이는게 매력"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57분


저는 도로시예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노란 벽돌길을 따라가는 작은 여자아이죠. 아시다시피 집과 함께 회오리바람에 실려 오즈의 나라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에게 다시 집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온갖 모험을 겪는답니다.

딱 100년 전 나온 제 이야기가 미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판타지 동화로 알려져 있다고 하네요. 요즘은 마법학교에 다니는 영국 출신 해리 포터라는 아이 이야기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면서요? 어떤 미국 사람은 좀 샘이 났는지, 앞으로 백년이 지나면 해리 포터는 잊혀져도 오즈의 마법사는 남을 거라고 했대요. 글쎄, 정말 그럴까요? 백년 후에 한번 봐야겠어요. 저야 뭐, 친구들이 많이 남으면 남을수록 좋지요.

하지만 전 해리 포터랑은 성격이 딴판이에요. 우선, 저는 전혀 마법을 쓸 줄 몰라요. 하늘을 날 수도 없고, 뭔가 펑하고 나타나거나 사라지게 할 수도 없죠. 그건 저와 함께 길을 가는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예요. 마법은 커녕, 보통 사람만도 못한걸요.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자.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행이죠.

더욱 우스운 건, 우리 소원을 다 들어줄 거라는 기대로 찾아갔던 오즈의 마법사가, 실은 우리보다 더 힘 없고 겁 많고 조그만 광대였다는 사실이에요. 그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우리 다섯이 하나도 놀랍지 않고 위대하지도 않은, 오히려 모자란 존재들인 거예요, 글쎄.

하지만 우리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 모자람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의 모자람을 아는 겸손, 그걸 채우기 위해 험한 길도 마다 않고 가는 의지, 서로서로 돕는 우정, 실망해 주저앉지 않는 낙천성.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덕분에 우리는 온갖 신기한 존재들이 사는 놀라운 나라 오즈에서도 주인공 노릇, 왕 노릇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 혹시 나에게 뭔가가 모자라다고 느끼시거든 오히려 그걸 기뻐하세요. 모자람은, 깨닫는 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채워지기 시작하니까요. 모험 초반에 허수아비가 얼마나 영리하게 계곡 건널 생각을 해내는지, 양철 나무꾼이 딱정벌레 밟은 데 얼마나 가슴아파하는지, 사자가 얼마나 용감하게 강을 뛰어넘는지 보시라구요. 100년 후에도 제 이야기가 여전히 기억된다면, 그건 하나도 마술적이지 않은 우리의 자그만 능력들이 합해져 멋지고 유쾌한 기적을 이뤄낸다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 덕분일 거예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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