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검찰 '脫정치' 해야 산다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20분


작년 한해 동안 검찰은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냈다. 연초부터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하면서 심재륜 파동으로 끝을 맺었다. 이어서 옷로비 의혹사건이 폭풍처럼 검찰조직을 강타하면서 급기야는 특검제 도입으로 결말을 보았다. 그 와중에서 다시 공안검찰 파업유도 의혹사건이 터졌다. 검찰의 위상과 명예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실로 악몽과도 같은 한 해였다.

새천년 새해가 밝아오면서 벼랑에 내몰렸던 검찰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기대했지만 검찰의 위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8월 돌출된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수사 결과에 대해 일반인의 불신이 팽배하자 재수사 결과를 내놓는 등 검찰의 자세와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여운을 남겼다. 또한 4·13총선 중 저질러진 선거사범 수사와 소추에서 검찰이 여당의 편을 들고 야당을 불리하게 다뤘다는 이유로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돼 17일 국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 수사는 정관계 로비의혹과 검찰 고위직 관련 의혹 등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의 수사 미진이나 법리 오해 등으로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빈도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98년 한 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 중 수사미진이나 법리 오해로 인한 것은 15.7%, 99년 18.4%이던 것이 올해 상반기에는 20.9%로 증가했다.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에 대한 행정법원의 면직 파기, 옷로비사건의 국회 위증부분에 대한 1심 법원의 이형자씨 자매에 대한 무죄판결,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확정 등은 결과적으로 법 집행에 대한 검찰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사례로 손꼽을 만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공소를 제기할 때 검찰이 피의자와 피의사건에 대해 좀더 확실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기소하는 신중성을 견지했더라면 일응의 혐의 때문에 기소됐다가 무죄로 끝나는 억울한 사례들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물론 국민의 입장에서도 수사와 공소제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엄정한 법집행과 당사자의 인권이익 배려 요구는 하나의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으로 검찰권에 대해 바라는 것은 공정성과 객관성이다. 엄정하되 공정하지 않으면 독재권력의 횡포와 다를 바 없고 인간적이되 편파적이라면 자의적인 권력행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는 법치가 확립되기 어렵다. 법치주의란 권력의 전횡을 막아 그 결실인 자유와 안전을 개인에게 돌려주고 이를 담보하는 장치 외에 다름 아니다. 권력의 전횡만큼 국민을 불안하고 불유쾌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검찰이 전횡의 흐름이 없이 공정하고 중립적인 법 집행기관으로 바로 서자면 이처럼 해를 거듭하면서도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먼저 검찰의 관행과 의식 속에 깔려 있는 과거의 잔재를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한 검찰의 장래는 없다. 정치도 법과 정의의 원칙 아래 있어야 한다면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거나 정치인과 가까이 해 검찰권이 정치화되는 일을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 16대 총선 당선자 수사처리현황이라는 검찰 내부문건 유출사건도 검찰의 이런 자세가 아직 확립되지 못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검사실 벽마다 걸려있는 ‘원칙과 기본이 바로 선 검찰’이라는 업무지침이 말에 그치지 않고 검찰 조직과 모든 구성원의 새로워짐과 거듭남의 촉매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검찰이 다시 사는 길은 정치권력의 하부기관으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법집행기관으로서 거듭나는 일이다. 국민의 눈에 검찰이 이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법과 정의의 수호자로 인식될 때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검찰을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는 불행한 사태의 재연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헌법적 탄핵소추제도를 정치도구화하는 형태를 옳다고 승인할 지배적인 법의식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제 정말 검찰이 성숙한 검찰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검찰이 국민의 검찰로 제자리에 바로 서야 불의와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도 확립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김일수(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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