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묻어두지 말고 굴려라"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7시 17분


《부동산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값은 무조건 오른다’는 공식이 깨졌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집을 사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보유 부동산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일도 많아졌다.

이제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는 불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이 재테크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 아니라 바뀐 부동산 패러다임에 걸맞은 새로운 시각과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미 부동산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상품도 바뀌고 있다. 주택의 경우 '사두면 오르는 시대’가 저물면서 소유보다 주거의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묻어두기식 투자 방식이 퇴조하면서 매달 고정 수입을 가져다주는 부동산이 가치 있는 투자대상으로 떠올랐다.

부동산과 금융이 만나 '부동산 투자신탁’이라는 새로운 상품이 공급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을 아는 것이 재테크의 첫걸음이다.》

▽부동산 가치 차별화〓돈이 되는 부동산과 그렇지 못한 부동산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바로 개발할 수 있거나 매달 고정적인 임대수입을 가져다주는 부동산이 알짜배기다. 수익성이 있는 부동산이 가치 있다는 것. 반면 개발 규제를 받고 있는 임야나 논, 밭 등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먼 훗날’을 기대하고 묻어두는 방식으로 땅에 투자했다간 자금만 묶이는 결과를 낳는다.

건국컨설팅 유종률 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 결정이 수익성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실제 값어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공시지가나 기준시가 등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도 지역에 따른 가격 차별화가 뚜렷하다. 서울의 경우 강남권이나 한강변, 입지여건이 개선된 곳 등 인기지역에만 수요자가 몰리고 웃돈이 붙는다.

▽주택 투자 가치 하락〓주택보급률이 90%를 넘어서면서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와 같은 집값 급등은 예상하기 어렵다. 집을 사고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이 쉽지 않은 셈이다.

주택의 환금성도 예전만 못하다.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택을 갖고 있거나 주택에 투자하는 데 따른 이점이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매매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면 집을 갖고 있어봐야 별 실익이 없다”며 "지역에 따른 가격 차별화가 진행되면서 비인기지역에서는 장기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전세난 지속, 월세 증가〓젊은 층을 중심으로 집을 사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는데다 주택을 이용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집값 급등이 없다면 굳이 허리띠를 졸라가며 내집마련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같은 움직임은 임대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소형 평형을 중심으로 가뜩이나 임대용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임대수요가 늘어나면 전세난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전세금이 올라도 매매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것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최근 지역에 따라 전세금이 집값의 80% 수준까지 올랐다. 일부 소형 평형은 전세금이 집값의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매매가는 소폭 오르는데 그치고 있다. 이는 임대 선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낮아진 은행 금리 탓에 집주인들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월세 임대를 선호하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리얼티코리아 송영민 사장은 "집값이 안정세라고 해서 모든 주택이 투자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다”며 "월세 수요가 많은 지역의 임대용 주택은 값어치가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신 주택상품 공급 활기〓아파트를 중심으로 물량 위주의 주택 공급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반면 주거형 오피스텔, 주거복합 등 신 주택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아파트도 새로운 기능과 상품으로 차별화되고 있다.

새로운 평면이나 단지설계, 정보통신망 등을 갖춘 신상품 아파트가 성냥갑 아파트를 대체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신영 정춘보 사장은 "소비자 입맛에 맞는 상품만이 살아남는다”며 "주택건설업체들도 상품의 질로 승부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부동산 간접투자 증가〓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 도입으로 부동산에 대한 간접투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리츠가 활성화되면 자금조달이 쉬워져 부동산 개발사업도 활력을 얻게 된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투자자 보호장치가 제대로 마련되면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국민은행 등 일부 은행과 기관이 판매한 부동산 투자신탁상품은 판매 초기 매진되며 인기를 끌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동조화〓과거 주식과 부동산은 대체 투자 상품의 성격이 강했다. 주식시장의 호황과 부동산 경기 상승이 엇갈렸다는 얘기.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전체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한 안정세에 접어들기까지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동조화가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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