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잘난 삼성'의 모래알 팀워크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9시 27분


지금은 LG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6년간 삼성의 간판타자로 활약하며 ‘삼성맨’으로 자부하던 ‘슬러거’ 양준혁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프로 입단 후 몇 년간 선배들의 집에 가본 기억이 없다. 집들이나 저녁식사 초대는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운동장만 떠나면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짐을 챙겨 뿔뿔이 흩어지기 바빴다.”

‘삼성이 왜 모래알 같은 팀이란 소리를 듣는가’를 제대로 알려주는 말이다. 물론 집들이를 하고 회식을 해야 야구를 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유대관계를 말해주는 결정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야구는 25명이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돌아가야 하는 단체운동이다. 선수들 각자가 서로 믿고 의지해야 그라운드에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과거 삼성에는 ‘잘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팀워크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감독이야 잘리건 말건 내 개인성적만 챙겨 높은 연봉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초창기 삼성 야구단을 지배한 이런 팀 분위기는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 ‘악습’을 만드는 데에는 구단도 일조를 해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의 연봉협상 테이블에선 ‘이면계약’이 횡행했다. 이른바 ‘뒷돈’이었다. 게다가 안타 몇 개, 홈런 몇 개에 따라 돈 액수가 다른 ‘메리트제’까지 실시했다. 팀은 지고 있어도 그날 타격성적이 좋은 선수는 더그아웃에서 히히덕거리기 일쑤였다. 프로야구 연감의 각종 투타통산 랭킹은 온통 삼성 선수들의 이름뿐이지만 한국시리즈 우승란에 삼성 라이온즈는 없다.

구단 연봉 최고액 삼성은 1승에 5000만원의 플레이오프 메리트까지 내걸었지만 올해도 우승을 못했다. 11번째 감독 역시 물러났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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