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순지 인터뷰

  • 입력 2000년 10월 13일 10시 38분


순정 만화적인 감수성으로 세상과 교감하는 <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 감독이 부산을 찾았다. 2년 전 <4월 이야기>를 들고 처음 부산을 방문했던 그는 당시 웬만한 배우들보다 더 많은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녀 주변 사람은 물론 그 자신조차 놀랐던 경험이 있다. 그것은 공기처럼 부드럽게 가슴을 파고드는 이와이 순지만의 영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분위기 있는 그의 외모 덕분이기도 하다.

그때의 좋은 기억을 안고 또 다시 부산을 방문한 그는 그러나 이번에 영화 없이 '빈손'이다. 이와이 순지 감독이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이유는 제작비 투자 및 해외 배급 모색을 위한 PPP(부산 프로모션 플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신작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이 이미 국내 영화사인 튜브 엔터테인먼트와 일본 제작사 '락 웰 아이즈'로부터 제작비 전액을 투자받은 상태라 PPP 참석이 절실히 요구됐던 건 아니지만, 그는 "좀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부산 방문은 정확히 <리리 슈슈의 모든 것> 때문이 아니라 아직 제목이나 내용도 정해지지 않은 차기작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의 3분의 2 분량을 촬영한 이와이 순지 감독은 가을 신을 찍다 말고 부랴부랴 부산행 비행기에 올랐다. 감기 기운 탓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부산 영화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20001년 가을 국내 개봉 예정인 이와이 순지 감독의 신작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튀는 영화'다. 존 레넌이 암살되던 날 태어난 신비로운 여가수 리리 슈슈와 그의 광적인 팬 사이트 '리리 홀릭'이 엮어 가는 사건을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 안에서 독창적으로 풀어나가는 영화기 때문이다.

내용도 이색적이지만 제작하는 방식은 더욱 특별하다. 이와이 순지 감독은 2000년 4월1일 인터넷 소설 <리리 슈슈의 모든 것> 홈페이지를 오픈한 뒤 사이트에 오른 글들을 조합해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이 사이트에 중독된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리리 홀릭'이라는 사교집단 사이트를 만들어 영화의 실제감을 더해주었다.

어디부터가 실제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도통 헷갈리는 이 영화는 가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답게 신인 여가수의 데뷔를 이끌어냈다. 영화 속에서 리리 슈슈 역을 맡은 여배우 사류는 현재 <글레이드><공명>이라는 두 장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실제 가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

일반적인 영화 제작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의 제작동기에 대해 이와이 순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러브레터>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뉴스에서 이지메를 당한 후 자살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난 어른들에겐 때로 아름답게 들리는 이 사건이 당사자에겐 얼마나 고통스러운 현재였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난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어두움을 표현해보고 싶다."

감독의 설명대로 라면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은 그에게 새로운 변신의 단초가 될 듯도 하다. 그러나 이와이 순지 감독은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만 보고 사람들은 내 영화를 순정 만화적이라고 쉽게 단정하는데, 사실 내 영화 중엔 거칠고, 어둡고, 난해한 작품들도 많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영화가 '순정만화'라는 단어 안에 갇히는 걸 거부했다. 그런 점에서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은 멜로나 미스터리 등 한 가지 장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화가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에 잠시 체류한 그는 곧 일본으로 건너가 <리리 슈슈의 모든 것>의 나머지 촬영에 몰두할 예정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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