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PIFF소식]<순환>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 관객과의 대화

  • 입력 2000년 10월 10일 13시 35분


부산국제영화제의 단골손님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관객들과 함께 <순환>을 본 후 짧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여러 모로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감독. 데뷔작인 <하얀 풍선>을 들고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그는, 부산의 길거리에서 본 어떤 상황에 영감을 받아 차기작인 <거울>을 완성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김지석 씨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자 내가 사랑하는 감독, 부산영화제를 정말 사랑하는 감독"이라며 파나히 감독을 소개, 관객들의 열띤 박수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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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파나히 감독이 동경영화제, 홍콩영화제 프로그래머 등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최고'라는 말을 연발해 나를 기쁘게 했다"며 부산영화제에 대한 파나히 감독의 애정을 살짝 전해주었다.

파나히 감독은 <하얀 풍선>으로 제48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거울>로 97년 로카르노영화제 대상을, 신작 <순환>으로 제51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상복 많은 감독.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어김없이 작품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그는 올해도 이란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 <순환>과 함께 부산을 찾아 영화제의 열기를 호흡했다.

▶남성 감독이 여성 문제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여성의 도움을 많이 받았나?

난 여성 차별이 심각한 이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누가 가르쳐 줘서가 아니라 이란의 여성 문제는 내가 살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친구와 둘이 썼고, 완성된 시나리오를 여성들에 보여준 뒤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순환>의 조연출을 담당한 사람도 여성이다.

▶영화 속에서 담배 피우는 걸 제약당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담배를 통해 당신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담배에 대한 제약은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여성들이 안고 있는 제한이나 한계를 이야기하기에 담배라는 소재가 적당할 것 같았다. 만일 담배가 아니라 사형처럼 좀 더 무거운 소재를 사용해 '제한과 한계'를 이야기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주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난 담배에 대한 제약을 모든 인간들이 처해있는 제한과 한계의 상황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왜 주인공들이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 왜 그녀들이 탈옥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등의 문제가 영화 속에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관객들이 직접 영화에 몰입해 그 이유를 생각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딸을 낳고 괴로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은 당신 자신이 딸을 낳으면서 겪었던 경험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들었다.

난 그 장면에 이 영화의 모든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물론 그 장면은 내가 겪었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지만, 그뿐 아니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다 내가 살아온 경험의 일부다. 그 장면에만 특별히 내 경험을 담아냈던 건 아니다.

▶<순환>은 사회 고발 정신이 투철한 영화인데, 당신은 영화라는 매체가 현실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영화가 사회 변화의 작은 동기를 제공해줄 수는 있지만, 결국 사회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난 이 영화가 사소하게나마 사회 변화의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감독이 아니라 남성의 입장에서 남자들이 여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남성들은 여권신장에 최소한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작과는 달리 핸드헬드 카메라를 많이 사용했는데.

촬영기법은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순환>의 주인공들은 계속 누군가에 쫓기고 있기 때문에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하는 게 적당할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네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첫 번째로 등장하는 여자아이가 18세 밖에 되지 않았고 이상향을 꿈꾸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이 어울릴 듯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여성들은 연륜이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고정된 카메라 워크를 주로 사용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꼬마 여자아이의 연기가 리얼하다. 연기지도는 어떻게 한 것인가?

"울어라" 하고 말했더니, 바로 울었다(웃음). 그 여자아이는 실제 내 조카인데, 아이를 길거리에 세워놓고 나와 스태프들이 슬쩍 사라져버렸더니 당황해서 울기 시작했다. 그때 그 아이가 생소해하며 두리번거리는 장면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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