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비교 릴레이]난세(亂世)를 베는 검객들

  • 입력 2000년 10월 6일 20시 12분


◇<비천무> 유진하 vs <바람의 검심> 히무라 켄신

만화는 고난도의 액션 연기와 최첨단 특수효과 없이도 초절정 고수들의 환상적인 검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고수들은 대개 불우한 성장기를 겪으며 강한 남자가 된다. 그들의 검술은 역사적 혼란기에 빛을 발하게 돼 있는데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것을 이용해 부귀나 권세를 도모하지 않는다. 그저 고독한 정의의 길을 따를 뿐이다.

검객 만화에 등장하는 고수 가운데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닌 두 검객이 있으니 <비천무(飛天舞)>(대원문화사 전6권)의 유진하와 <바람의 검심(劍心)>(서울문화사 전 26권)의 히무라 켄신(켄신은 劍心의 일본식 발음)이다.

지난 여름 영화로 만들어진 김혜린의 <비천무>는 엄밀히 말해서 순정물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주인공 진하의 면모는 무협 주인공적 특징이 강하다. 가문의 막대한 재산과 대대로 전해오는 검법서를 노린 세력에 의해 멸문의 화를 당하고 살아남은 진하. 그는 설리라는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설리의 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다. 또 한번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진하는 비기 비천십이기를 완성하고 최강의 검객이 된다. 그러나 설리의 혼인 소식을 접하고 실의에 빠진 진하는 자하랑이라는 이름으로 청부 자객의 길을 걷게 된다.

와츠키 노부히로의 <바람의 검심> 주인공 히무라 켄신은 가진 거라곤 달랑 칼 한 자루 뿐인 나그네 검객. 그러나 왕년에는 '칼잡이 발도재(拔刀齋)'라 불리던 악명 높은 자객이었다. 켄신은 방랑 중에 우연히 카오루라는 소녀가 운영하는 검술도장에 머물게 된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갖가지 사건을 겪는 켄신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만 검을 쓰기로 한 자신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면 과연 이들의 검술은 어떤 수준일까? 그 해답은 이들이 구사하는 검술 이름에서 드러난다. 진하의 비천십이기(飛天十二神技), 켄신의 비천어검류(飛天御劍流). 모두 '비천'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으니 독자들도 수준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검술은 한 편의 환상적인 퍼포먼스 같다. 팔에서 검으로까지 확장되는 선, 그 선이 날렵하게 움직이면 그것이 바로 베고 찌르는 동작이 되는 것이다. 한방에 '탕'으로 끝나는 시시한 총격전은 그러니 비할 바가 아니다. 검도학원으로 달려가 죽도라도 휘둘러 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을 최강으로 키운 스승은 그럼 누구일까? 진하의 경우는 '비천십이신기(飛天十二神記)'라는 검법서다. 검법을 전수시키고 가문의 원수를 갚게 하려는 삼촌(후에 그는 삼촌이 아니었음이 밝혀진다)에 의해 진하는 혹독한 수련을 거치지만 결국은 독학으로 비천십이신기를 터득한다.

켄신은 교과서가 없었던 대신 사부가 있었다. 길다란 망토를 걸치고 한껏 위세를 부리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검객 히코 세이쥬로가 그 사람이다. 그는 도적떼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켄신을 구해주고는 '비천어검류'를 전수한다. 그러나 자신의 살인 기술이 더 이상 쓰여지지 않길 바랬던 켄신은 '비천어검류'를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는다.

두 고수는 이런 검술 실력 못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 진하는 미남 미녀로 이름을 날리던, 좋은 혈통의 부모를 둔 덕에 미남이다. 다만 <비천무>가 붓을 많이 사용하는 소녀용 순정물이어서 그런지 진하의 눈빛은 슬프고 외롭다. 반면 켄신은 28세인데도 10대처럼 보이는 미소년 같다. 소년용 명랑물인 <바람의 검심> 주인공 답게 켄신의 눈은 명랑하고 동그랗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켄신의 눈동자가 적과 마주하면 날카롭게 결투모드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들은 검객의 스테레오타이프과 다른데 평소 진하는 피리를 즐겨부는 예술가 스타일이고 켄신은 푼수짓을 즐기는 개그맨 스타일이다.

두 주인공에게 각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만화 자체가 역사적인 혼란상황을 단순히 극중 배경으로만 삼지 않기 때문이다. 즉 두 고수는 그 상황 속에서 역사의 대세와 갈등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원제국이 망하고 명이 세워지는 14세기 중후반의 중국이 배경인 <비천무>에서 진하는 결국 자신의 가문을 부흥시키는 것에서도, 주원장을 도와 새로운 제국을 세우는 데에서도 자신의 이상을 두지 못한다. 다만 원에 끌려와 있던 고려출신의 도공 아신이 유민들과 함께 꾸린 일종의 자치구 '망월단'을 돕는 것으로 정의를 실현할 뿐이다.

켄신 역시 권력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다. 극중 배경이 되는 명치유신 전 켄신은 유신의 3걸 중 한사람인 가츠라 코고로우에게 발탁돼 유신파의 자객이 되고 유신 후에는 메이지 정부의 육군 총감인 야마가타 아리토모로부터 요직을 제의받지만 거절하는 것이다. 이런 두 작품을 보노라면 틈틈이 역사 상식을 얻기도 하고 역사적 실존 인물이 잠깐씩 카메오로 출연해 즐거움을 준다.

이재연<동아닷컴 객원기자>skiola@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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