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부산영화제 개막작<레슬러>

  • 입력 2000년 10월 5일 19시 06분


아시아 최대규모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6일부터 꿈결같은 스크린 축제에 돌입한다.

올해로 5회를 맞는 부산영화제 첫날 개막작으로 선보일 부다뎁 다스굽타 감독의 ‘레슬러’는 세계 최대 영화제작국인 인도의 저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벽촌의 한 마을에서 철도 건널목을 관리하는 니마이와 발라람은 시간만 나면 레슬링에만 몰두하며 우정을 나누는 젊은이다. 하지만 발라람이 아름다운 고향처녀 우타라와 결혼을 하면서 마주보고 달리는 철로처럼 모든 일을 함께 나누던 두 남자 사이에 긴장이 형성된다. 우체통속 편지에 적힌 글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에 귀기울일 만큼 고운 심성의 우타라는 부모잃은 고아 매튜와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는 선한 마을 목사와 친해진다.

영화는 니마이와 발라람이 우타라를 두고 진짜 대결을 벌이면서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마을 불량배들에게 린치를 당한 목사는 교회와 함께 불탈 위기에 처하지만 우타라의 애원에도 두 레슬러는 내면의 질투와 분노 때문에 정작 필요한 곳에 힘을 쓰지않는다. 유일하게 나서는 것은 이웃 마을 난쟁이 뿐.

경제학교수출신의 다스굽타감독은 인도사회를 지배하는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아름다우면서도 상징적인 롱테이크 화면 속에 절묘하게 포착한다. 그는 버스가 고장나면 몇시간을 기다려야하고 야외 스크린이 바람에 날려가면 영화관람도 포기해야하는 인도의 현실을 정감있게 묘사하면서도 섣불리 희망적 메시지에 안주하지 않는다. 목사는 끝내 불타죽고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발찌를 벗어던지고 난쟁이마을로 가려던 우타라의 희망도 부서진다. 인도영화라면 빠지지 않는 흥겨운 춤과 음악은 여전하지만 그런 장치들이 얼마나 슬프게 다가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레슬러’로 막을 여는 부산영화제는 7일 빔 벤더스와 뤽 베송 등 유럽영화인들이 참여하는 유럽영화리셉션이, 8일에는 춘향전 특별전 야외무대 인사 등이 펼쳐진다. 10일부터는 제작단계의 유망 아시아영화에 대한 투자와 배급망을 연결해주는 부산프로모션플랜(PPP)행사의 일환으로 디지털영화 장비와 촬영기법 등을 자세히 소개된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왕자웨이(王家衛)의 ‘화양연화’는 13일 상영되며 수상작 발표와 폐막식은 14일 치뤄진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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