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기자의 백스테이지]가요순위프로 존재이유는 '공정성'

  • 입력 2000년 10월 5일 12시 00분


'가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순위에 올리지 않는다?'

우리 공중파 방송사의 행태다.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방송사의 대표적 악습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10월3일 오후 방영된 KBS '뮤직뱅크'를 지켜보며 가요 프로의 구태를 본 기자의 마음은 씁쓸했다. 1위 후보는 '아시나요'의 조성모와 '성인식'의 박지윤. 서태지는 순위에서 아예 볼 수 없었다. 10월1일 방영된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서도 서태지는 2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다만 7일 방영될 MBC '음악캠프'에서는 조성모와 박지윤 그리고 '울트라맨이야'의 서태지가 정상을 다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3명의 인기가 막상막하라는 건 가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각종 음반 판매순위 1,2위를 다투고 있는 서태지를 두 방송사는 순위에도 올려 주지않고 있다.

이런 집계를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방송사들은 인터넷 투표, 엽서, 전화 ARS, 방송사의 자체 집계를 모두 감안해 순위를 결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런저런 집계 내용을 방송사가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태지가 MBC에만 출연하는 것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한 게 아닌가 싶은데 진정으로 시청자를 위한다면 순위를 배제한 경위 정도는 밝혀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동안 자체 규정을 들어 가수들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간섭하고 통제해온 방송사로서는 그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늘 강조하는 순위 집계의 공정성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서태지에 대한 순위 결과가 공개됐어야 옳지 않았을까.

차제에 기자는 공중파 방송사들이 낡은 가치기준을 일방적으로 가수에게 적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을 무시해 가며 시청자를 보호하겠다는 태도가 어쩌면 시청자의 '볼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폭력과 불륜이 판을 치고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난무하는 드라마는 괜찮고 가수들의 염색한 레게 머리는 미풍양속을 해치기 때문에 안된다는 건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다 보여주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유연한 사고로 세상과 현실을 보고 그에 맞게 기준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모든 가수가 생머리에 정장 차림으로 얌전하게 무대에 설 수는 없지 않은가.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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