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운찬/구조조정만이 경제 살린다

  • 입력 2000년 9월 24일 18시 43분


주가가 지난 한달 반 동안 급락과 소폭의 반등을 거듭한 끝에 종합주가지수는 553.25, 코스닥지수는 76.46까지 떨어졌다. 새 경제팀이 들어선 이후 각각 20.9%와 38.3%가 빠진 셈이다.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주가가 올라갈 때는 구조개혁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던 정부는 이번 주가하락을 대외적 요인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유가상승, 포드의 대우자동차 매수 포기, 미국 나스닥지수 하락 등 핑계도 많다. 궂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은 지지 않고 내 탓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정부의 행태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다.

대우자동차 매각 무산은 채권단 손실과 부품업체의 어려움을 가져올 것은 틀림없지만 주식시장을 공황상태로 몰아 넣을 만한 악재는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정부의 취약한 문제해결 능력이 국제금융시장에 노출된 것이 큰 악재였다. 그동안의 대우자동차 매각 경위는 정부가 대우그룹 문제를 포함해 크고 작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투자자들이 의문을 품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우선 입찰 참가자들이 제시한 입찰가격을 공개해 대규모 국제거래에서 범해서는 안될 상식 이하의 실수를 저질렀다. 응찰가격이 공개되면 매수자나 매도자 모두 정치적으로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종 매매가격이나 조건에 대한 당사자간 협상의 여지도 좁아진다.

또한 현 경제팀은 매각 무산의 원인을 포드측의 불량타이어 리콜 등 경영악화에서 찾았다. 이것은 긁어 부스럼이었다. 포드뿐만 아니라 잠재적 매수자인 GM도 협상 당사자와의 거래와 관련된 사항을 세상에 흘렸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물건을 살펴보고 안사겠다면 그만 아닌가.

더욱 가관인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정부가 대우자동차의 선(先)매각 후(後)정산을 제시하고 한달 안에 모든 매각작업을 마무리짓겠다고 발표해 버린 것이다. 정부의 초조함을 보여주는 황당하고 현실성 없는 발표였다. 금융시장이 불안할수록 정책 책임자들은 신중한 언행으로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만 하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최근 주식시장 불안의 단기적 원인은 정부의 상황판단능력과 위기대처능력의 부족이 외부에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조정 부진과 그에 따른 신뢰의 상실에 있다. 정부는 이제 가시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부실기업들, 한 예를 들자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 3년 이상 계속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은행도 가장 부실한 것 한 개 쯤은 문을 닫아야 한다. 잃은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 정도의 고강도 조치는 필요하다.

30년 이상 정부에만 몸담아온 공무원 출신 장관들이 이 정도나마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현 경제팀에는 김영삼(金泳三)정부의 IMF 경제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만든 문제를 어떻게 스스로 풀 수 있겠는가.

또한 현 경제팀은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기획사이드에서 일하던 사람 중심으로 구성돼 섬세한 문제풀이에 약하다. 목표달성 지상주의에 어설픈 시장주의와 섣부른 개방주의를 덧칠한 사람들로는 위기관리가 힘들지 않겠는가.

끝으로 현 경제팀에는 호남 출신이 너무 많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이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성공작과는 거리가 멀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시장은 확실한 변화를 원한다.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경제팀 교체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면모일신으로 시장에 구조조정의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식견과 비전, 그리고 용기를 갖춘 이들이 오늘처럼 필요한 때도 없었다.

그리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김대통령이 ‘수평적 정권교체, 외환유동성 위기 극복, 남북관계 개선 대통령’으로만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사실 경제가 잘 안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운찬(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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