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도요새와 조개

  • 입력 2000년 9월 22일 19시 19분


이제 도요새는 부산을 거쳐 북쪽으로 날고 있다. 아직도 새의 부리에는 커다란 조개가 매달려 있다. 도요새와 조개는 벌써 몇달째 고통스럽고도 딱한 ‘물고 늘어지기’를 계속하고 있다. 둘 다 세상의 웃음거리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도요새는 조개의 ‘국회법날치기’ ‘선거비용조작의혹’ 약점을 놓치고 싶지 않다. 조개는 조개대로 ‘정기국회’에 등돌린 도요새도 손가락질 받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서로 상대가 약세를 보일 때까지 버틸 심산이다. 죽어도 좋다, 네가 물러설 때까지 본때를 보이리라.

정치의 세(勢)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당선에는 절대적으로 얻어야 할 표수가 있는 게 아니다. 상대보다 한 표라도 더 많으면 이긴다. 그러기에 둘 다 망신당하고 손해보더라도 내가 약간 덜 밑진다면 그것이 정치에서의 승리다. 욕먹고 웃음거리가 되고 상처 입는 것은 정치 세계의 다반사다. 담대하고 강건하게 버티자, 어디 부리가 깨지나, 조개껍데기가 터지나 보자.

방휼지세(蚌鷸之勢)라는 말이 사전에 있다. 도요새와 조개의 이런 강인하고 사나운 싸움을 이른다. 하늘을 날던 도요새가 군침을 흘리며 벌어진 조개 껍데기 사이를 덮친다. 순간 조개는 도요새의 긴 부리를 덥석 물어 버린다. 동물세계의 먹느냐 먹히느냐, 허우적대는 소모전은 어부에게 좋은 구경거리다. 둘이서 퍼득이다 땅바닥에 처박히면 그야말로 어부지리(漁夫之利)다.

인간들, 그중에서도 특히 머리좋은 정치집단이 그런 어리석은 물어뜯기에 빠지는 것은 보기에도 딱하고 서글프다. 야당과 여당은 오늘도 도요새와 조개보다 더 사납고 지독한 ‘파괴적 경쟁’에 사로잡혀 있다. 그 여파로 국민이 당하고 나라가 망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여당은 정치적으로 밀리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대통령임기후반 바람 빠진 풍선이 되지 않겠다는 초조함으로 이를 앙다문다. 야당은 정권측의 실수와 자책을 밟고 기어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정권고지에 오르겠다고 벼른다.

정치의 방휼지쟁은 웃고만 즐길 여유가 없다. 어부지리는커녕 나라와 국민에게 대재앙을 부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어부지리를 취한다면 그 주체는 다른 나라 이(異)민족 국제대자본이 된다. 섬뜩하지 않은가. 그런 다툼을 막을 힘은 시민단체나 언론의 건전한 비판 질책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구경군조차 도요새 편으로, 조개 편으로 갈려버린 형국이다. 또 매 맞기에 이골이 난 ‘정치 방휼’은 웬만한 팔매질에는 꿈쩍도 않는다.

경제위기는 다가왔고 민심은 흔들린다. 주식시장에선 외국인들의 불신 투매로 주가가 600선을 헤매고,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와 기름값 비싼줄 모르는 소비풍조속에 고(高)유가 쇼크를 맞고 있다. IMF난국이래 시늉뿐이었다는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 1년 넘게 쏟아부으면서 금융부실만 키워온 대우문제와 대우차 매각지연, 그리고 반도체경기의 하강조짐이 위기를 부추긴다.

전적으로 정치권이 망치고 있는 부분도 있다. 한시가 급한 공적자금(40조원 규모)조성, 금융지주회사법 및 구조조정관련법률 제정이 늦어지는 것은 한마디로 여야 사정 때문이다. 동티모르에 파병한 군인들도 9월말로 시한을 맞기 때문에 파병연장안이 국회에서 처리 돼야 한다. 자칫 불법 파병이 되거나, 전원 귀국했다가 다시 출병하는 국제적인 코미디가 될 수 도 있다.

150여년전 청나라가 망해갈 때의 얘기다.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진 청국은 영토를 얼마나 떼주느냐에는 숫제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대신 황제가 영국 사절을 맞을 때의 예(禮)가 문제였다. 영국인들에게 삼궤구배(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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