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평온한 일상에 엄습한 공포 '왓 라이즈 비니스'

입력 2000-09-21 19:09수정 2009-09-22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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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아내이자 다정다감한 엄마인 클레어(미셸 파이퍼)는 남부러울 게 없는 여자다. 대학교수인 남편 노먼(해리슨 포드)은 자상하면서도 자기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지고 있고 대학에 진학한 외동딸은 독립된 삶을 찾아 집을 떠나갔다.

호수가의 그림같은 저택에서 예쁜 정원을 가꾸면서 남편과 딸 뒷바라지하느라 시간의 서랍 한 구석에 치워뒀던 자신의 삶을 즐길 일만 남았다.

하지만 뜨거운 김이 가득 서린 욕실 저 너머에서, 수초가 무성한 호수 밑바닥 저 아래서 무언가가 그녀를 끊임없는 불안속으로 몰아넣는다.

중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해리슨 포드와 미셸 파이퍼가 처음으로 공연한 ‘왓 라이즈 비니스(What Lies Beneath)’는 어쩌면 ‘아메리칸 뷰티’의 서스펜스판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속에서도 한없이 풍요롭고 평안해보이는 미국 중산층의 의식 밑바닥에 깔린 불안과 공포의 정체를 스릴러와 미스터리 형식으로 추적해가기 때문이다.

스필버그의 수제자로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하는가’로 만화속 세계의 과격함을 고발하고 ‘포레스트 검프’로 미국 현대사를 동화속 보수적 시각으로 포착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으로선 그 불안의 정체를 정공법으로 다룰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수효과의 귀재답게 그 불안감을 묘사하는 솜씨는 탁월하다. 욕조에 담긴 물과 호수의 수면 그리고 거울을 통해 언뜻언뜻 비치는 흐릿한 그림자, 빈집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웃 부부의 기이한 행동 등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시작하고도 한참동안 딴짓만 하던 영화는 20분이 지나고 나서야 미스터리 냄새를 풍기고 1시간이 넘어가면서 심령물로 둔갑하고 막판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미셸 파이퍼는 자신의 가냘픈 몸을 울림통으로 그런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데 단단이 한 몫 한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로 공포를 강요하는 앳된 배우들과 달리 비명소리마저 삼켜버리는 창백한 표정과 신들린 듯한 눈빛으로 진짜 공포연기가 뭔지를 보여준다. 해리슨 포드도 과감하게 기존 이미지를 뒤집으며 분발했지만 작위적인 냄새가 짙다.

이 영화는 확실히 올여름 개봉한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무리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더라도 그 공포의 정체가 할리우드의 가족주의 울타리 안에 묶여 있다는 점 때문에 ‘아메리칸 뷰티’의 결론이 가져다주는 막막함의 경지를 쫓아갈 수는 없다.

영화를 위해 버몬트주 애디슨의 샴플레인 호수가에 직접 지었다는 집은 진짜 그림같고 미셸 파이퍼의 발가락을 꼼꼼이 관찰할 수 있는 재미도 있다. 15세이상 관람가. 30일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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