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시드니에 태극기가 없다

  • 입력 2000년 9월 19일 19시 14분


“어디 태극기 보내주실 분 없습니까.”

올림픽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시드니는 지금 만국기 물결에 휩싸여 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국기를 모자로 만들어 머리에 쓰거나 외투 모양으로 목에 걸어 몸을 감싸기도 하고 치마처럼 국기를 두른 각국의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일장기를 셔츠 뒤쪽에 새겨 넣은거나 띠 모양으로 만들어 머리에 두른 일본 응원단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곳 거리에서 태극기를 손에 쥔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태극기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워킹 홀리데이(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관광을 하는 프로그램)로 호주에 머물고 있는 이성열씨(21)는 친구들과 함께 수기(手旗)를 구하러 시드니 총영사관을 찾아갔지만 개인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말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이씨는 상점에서라도 구입하려 했지만 태극기를 파는 상점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시드니올림픽 코리아응원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김주중씨는 도착 첫날 한인회관에서 만난 한 교민으로부터 수기를 나눠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교민들의 응원을 총지휘하고 있는 시드니올림픽 한호후원회도 태극기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태극기 9000장과 대한체육회로부터 지원받은 한반도기 1500장은 개막 닷새만에 동이 났다.

후원회는 급히 한국의 한 증권사에 도움을 청해 19일 오전 500여장씩의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공수해왔지만 얼마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대한체육회에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추가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시드니 총영사관은 기자의 전화를 받고서야 태극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호후원회의 최병두 부회장은 “앞으로 경기가 열흘이 넘게 남았는데 우리나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국기가 부족하니 걱정”이라고 말했다.며 “이런 사실을 한국에 제발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시드니〓신치영>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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