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유도]최용신 '무명의 반란'…나카무라에 한판승

  • 입력 2000년 9월 18일 18시 38분


‘눈물 섞인 땀방울은 결코 노력하는 자를 배반하지 않는다.’

18일 남자 유도 73㎏급 경기가 열린 시드니 달링하버 전시홀.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최용신(22·용인대 4)의 ‘조용한 반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1회전에서 키르기스스탄의 사니코프를 1분40초만에 발뒤축걸기 한판으로 물리친 최용신에게 고비는 의외로 빨리 찾아 왔다. 96애틀랜타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99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절정기에 오른 지미 페드로(28·미국)와 2회전에서 맞닥뜨린 것. 페드로는 ‘굳히기의 대가’. 선제 공격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최용신은 경기 시작과 함께 적극적인 공세로 나갔고 밀리기만 하던 페드로는 주의를 받았다. 여유를 얻은 최용신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채 우세를 유지한 끝에 5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우세승을 챙기며 한 고비를 넘었다.

하지만 최용신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96애틀랜타올림픽 우승자로 2연패를 노리던 나카무라 겐조와의 8강전. 매트에 나선 최용신의 얼굴은 전혀 감정이라곤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나카무라는 그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는 강적. 하지만 초반 치열한 기 싸움은 의외로 쉽게 최용신쪽으로 기울었다.

경기 시작 40초가 지날 무렵 어깨매치기가 주특기인 나카무라가 잡기싸움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주의를 받은 것. 이후 나카무라는 서둘기 시작했고 최용신은 노련하게 나카무라의 접근을 막아내며 틈을 노렸다. 최용신의 전광석화같은 공격이 이어진 것은 1분25초가 막 지날 무렵. 나카무라가 기술을 걸기 위해 접근하는 순간 최용신이 기습적인 빗당겨치기를 성공시키며 나카무라를 한판으로 매트에 메다꽂는데 성공했다.

사실상의 결승전인 8강전 고비를 넘은 최용신은 그제야 금메달을 확신한 듯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유도 명문 보성중고를 거치며 ‘모든 체급을 통틀어 랭킹 1위’라는 평가를 받았던 최용신은 용인대 진학 이후 주위의 기대가 무색하게 지난해 파리오픈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연속 3위에 머무는 등 국제대회에서 단 한차례도 우승하지 못하는 부진속에 서서히 잊혀져 갔다.

문정초등학교 4년때 처음 매트에 선 뒤 줄곧 정상을 지켰던 최용신에겐 참을 수 없는 굴욕의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기간은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항상 이기는 데만 익숙했던 최용신은 차분히 자신의 유도를 되돌아 보며 약점 보완에 전력을 기울였다. 92바르셀로나올림픽 당시 이 체급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정훈교수(32·용인대)도 조용히 최용신의 변신을 도왔다.

<김상호기자>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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